매일신문

[한준희의 교육 느낌표] 교육은 질문을 공유하는 과정이다

학교에서는 대체로 줄거리를 요약하고 인물, 사건, 배경을 분석하고 주제를 파악하는 방식으로 문학작품을 감상합니다. 구조 분석을 통해서 작품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작품 감상능력이 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훌륭한 레시피를 외우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문학토론연구모임의 '공감을 배우는 토론학교-문학' 중에서)

토요논술학교가 3월 30일 개강했다. 논술지원단은 몇 번의 워크숍을 거쳐 2012년까지 이루어진 주제별 통합교과형 수업형식을 변형하여 대학별 실전 논술 과정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입시라는 현실적인 벽을 넘어야 한다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받아들인 것이다.

독서, 토론, 글쓰기 등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대비할 수 있는 논술고사는 분명 교육의 미래나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평가 방식이다. 선다형으로 이루어진 평가제도와 그것을 위한 일방통행식 수업 방법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바로 논술 교육이다.

하지만 논술 교육이 한국 교육의 주류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 교육은 오랜 시간 '보편타당한' 정답, 특히 '객관적'으로 요약된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다 보니 가장 유용하다고 현실적으로 인정받은 수업 방법이 일방적인 강의였다. 논술고사조차도 그렇게 하면 대비가 가능하다고 몇백 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일방적인 강의를 한다.

정답을 요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매뉴얼'을 중시한다. 매뉴얼은 유용하지만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매뉴얼을 따라갈 때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논술과 관련된 책들도 대부분 '매뉴얼'이다. 논술이 '나'와 '세상'이 나누는 대화라면 '나'가 사라진 거기에 소통이 일어날 수 없다. 훌륭한 레시피를 외우고 있다고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는 없는 것처럼.

한국형 논술의 가장 큰 특징은 제시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선발고사가 지닌 객관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제시문을 통해 제한된 관점을 제시하는 까닭은 기본적인 접근의 방향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렇게 제한했음에도 논술에서 다루는 주제들은 학생들에게 여전히 낯설다. 이런 주제에 대해 학생들의 견해를 펼쳐 보라는 요구 사항은 당연히 더욱 낯설다.

우리의 학교 교육이 '외우기'와 '정답 찾기'에 매몰되어 있는 한, '나'의 견해가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논제 자체도 대체로 전제가 있는 상황이기에 학생들의 우선적 고민은 '어느 것이 정답일까'다. 하지만 학생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답 찾기' 습관을 버리는 것이다. 한국형 논술에도 정답은 없다. 아니, '다양한 정답'이 존재한다. '다양한 정답'은 일방적인 강의로는 찾을 수가 없다. '다양한 정답'에는 반드시 서로 다른 '나'가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 현재에도 강의가 필요한 수업이 존재한다. 지식 그 자체에 대한 이해를 위한 수업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이 필요한 산업화 시대에는 그러한 방식이 적절한 교육 방법이었다. 목표를 설정하고 해답을 만든 다음 그곳을 향해 열심히 달려 그 목표를 성취하고 해답을 얻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잘사는 나라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을 공유한 공동체'가 아니라 '질문을 공유한 공동체'다. 해답은 오히려 끊임없이 생산되고 해체되어야 할 무엇일 뿐이다. 질문의 공유는 서로 다른 많은 답을 생산한다. 질문을 공유하는 공동체에서의 해답은 '틀린' 답이 아니라 서로 '다른' 답일 뿐이다. 강의와 선다형은 결코 서로 '다른' 답을 만들지 못한다. 거기에는 단지 '맞는' 답이 있을 뿐이다.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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