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무제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촉발된 엔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엔저 공습으로 비유되는 엔화 약세는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변수로 떠올랐고 지난해 말부터 대일본 수출이 줄어드는 등 대구경북 지역이 엔저에 따른 영향권에 들어서고 있다.
◆엔'달러 환율 100엔 돌파 시간문제
최근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일본의 양적완화가 디플레이션을 타개하고 물가 안정을 꾀하기 위한 조치라는 일본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가장 먼저 외환시장이 출렁거렸다.
주말 휴장 후 22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장한 호주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장 초반 99.98엔까지 치솟아 2009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어 열린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엔'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99.32엔)보다 크게 오르며 장중 한때 99.89엔을 기록하며 100엔 돌파를 눈앞에 뒀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조만간 심리적 저항선인 100엔 선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엔'달러 환율이 110엔에서 120엔대에서 형성될 것으로 보여 100엔 돌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는 올라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3년 1분기 중 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올 1∼3월 평균 원'엔 환율은 100엔당 1,177.3원으로 전 분기(1,346.4원)보다 169.1원 하락했다. 엔화에 대한 원화 가치의 절상 폭은 14.4%로 2009년 2분기(14.5%) 이후 가장 크다.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
엔저는 국내 증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욕 증시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23일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7.68포인트 하락한 1,918.63으로 거래를 마쳤다. 엔저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이 주가를 끌어내린 한 원인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엔저로 인한 국내 주식시장의 타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엔저 현상이 이미 국내 증시에 상당 부분 반영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자동차, 기계, 철강, 조선 등 일본 기업과 경합을 벌이는 업종과 엔저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여행 업종 등의 주가는 엔저 영향을 많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지난 2분기 동안 국내 주식시장은 엔저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이미 받았다. G20 회의 결과는 정치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추가 리스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차 등은 추가 하락이 있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관광업계는 비상
엔저 영향으로 일본 관광객들이 급감하면서 관광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지역 관광호텔에 투숙한 일본인 수는 지난해 10월 4천312명에서 11월 3천466명, 12월 2천390명으로 계속 줄고 있다. 특히 올 1월 1천828명, 2월 1천636명을 기록, 2천 명 아래로 떨어졌다.
전국적인 상황도 비슷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치 상위 60개 여행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골든위크(일본 공휴일이 몰려 있는 황금주간, 4월 27일~5월 6일) 동안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은 지난해보다 10.9% 감소한 11만4천 명에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에 독도 영유권 갈등, 북한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일본인 관광객 수가 급감한 것.
지역 여행사 관계자는 "엔저 영향 등으로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지면서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다. 관광 한류 열풍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에서 마케팅 비용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호텔업계도 작년 하반기부터 지속된 엔저 현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호텔업계는 일본 투숙객을 대체할 수요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엔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중국 등 다른 국가를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역 기업 피해 수면 위로
대구경북 지역 기업들의 엔저 현상으로 인한 피해는 전년 대비 대일본 수출이 감소하면서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선식 및 시리얼을 만드는 웰츄럴은 지난해 해외 전시회를 통해 일본 시장 진출의 물꼬를 텄다. 올 8월 일본 현지 홈쇼핑에서 방송을 할 예정이다. 일본에는 선식 시장이 없어서 이곳을 잘 활용하면 수출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엔화가격이 떨어지면서 장기적인 시장 진출에 부담감을 갖게 됐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주문량이 많지 않아 영향이 없지만 계속적으로 엔화가 떨어지면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현지 바이어들의 체감 가격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동차 부품업체 역시 일본 완성차업체의 세계시장 성장세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올라가는 가운데 현대자동차 리콜 사태 등 때아닌 악재도 발생해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지 않을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계획을 변경하고 있기도 하다"고 했다.
반면 일본으로부터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엔화 대출을 받은 기업의 경우 엔저 현상으로 이익을 얻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업계는 이 같은 이익은 미미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이동복 대구경북본부장은 "엔저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지역 주력 업종들의 수출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유관기관의 지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대구경북지역의 대일본 수출액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월별 수출액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올 1월부터 수출액이 전년 대비 크게 줄어들었다. 올 1월과 2월, 3월 수출액은 각각 4억3천97만달러, 3억1천617만달러, 3억4천171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14.2%, 29.6%, 18.4% 감소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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