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잔혹한 봉건 영주, 에첼리노 3세

에첼리노 3세는 중세 말엽인 13세기에 이탈리아 북동부를 통치한 봉건 영주였다. 노련한 지휘관이자 뛰어난 책략가였지만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잔혹함 때문이었다. 라이벌 가문에 대해 끊임없는 증오심을 보였고 간계를 부리며 인근 영주들과 끝없이 반목했다. 전투에서 무자비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으며 영지의 백성에게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학정에 시달리게 했다.

1194년 오늘, 이탈리아 북동부 바사노의 영주 에첼리노 2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은퇴한 아버지로부터 29살에 트레비냐노를 물려받고 나서 다른 지방의 귀족들과 연합해 3년 후 베로나를 장악했다. 이후 신성 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 접근, 그의 지원을 업고 비첸차와 파도바를 철저히 짓밟아 악명을 떨쳤다. 이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가 그를 파문하고 십자군을 일으키자 밀라노로 세를 확대하려던 계획이 좌절됐으며 1259년 9월, 전투에서 부상당해 65세의 나이로 숨졌다.

그의 사후에 단테가 '신곡'의 지옥 편을 통해 에첼리노 3세의 전설적인 잔혹성을 다루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작가들도 그가 어릴 때 라이벌 가문의 창문에 돌을 던짐으로써 '악마'의 싹수를 보였으며 그의 정신은 지옥에 연결됐다고 기록했다. 악의적인 의도가 엿보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등 가족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