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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잠실 인파는 '시위대'일까 '시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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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시민 박상용 씨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시민 박상용 씨

#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주변은 인파 수만 명으로 가득했다. 컬러로 인쇄된 양질의 피켓은 없었다. 이들은 누군가가 한 켠에서 끊임 없이 도화지 위에 그려내고 있는 태극기와 '재선거'라는 글씨가 적힌 도화지만 들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주로 들리는 전문 시위꾼의 끊임 없이 나오는 선전용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재선거"라는 3음절만 무한반복됐다.

# 일각에선 지난 6년 간 '부정선거'를 외쳤던 인파와 도화지에 이들의 슬로건인 'Stop the Steal'을 적는 사람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이상한 구호가 나오면 주변에서 "그러지 말라"는 목소리가 자동으로 더 높아졌다. 하루 전 국민의힘 인사가 이곳 단상에 올라 발언을 한 것 때문인지 입구에서 무료 음료가 배치된 탁자 위엔 전날 밤부터 "특정 정당 X" "저희는 단체·시위대가 아닙니다. 모두 개인이 지원해 참여하고 있습니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시민 대부분이 정치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특정 정당이나 특정 단체의 입김이 닿지 않도록 내부단속과 자가검열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쓰레기 처리나 통행 동선 관리 등 언론의 꼬투리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흔적이 여러 군데에서 발견됐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5일부터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방선거 재선거 요구 집회의 목적성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주요 언론과 각종 커뮤니티에서 이 집회를 2020년 총선 때부터 부정선거를 외쳐온 시위대와 윤 어게인 시위대가 모여 벌이는 시위라는 주장이 대두돼서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런 주장과 다른 정황이 나왔다.

핸드볼경기장으로 진입하는 입구엔 물과 커피, 다양한 종류의 음료, 피자, 도넛 등 식음료가 무료로 끊임 없이 제공됐다. 주변에 배치된 커피 트럭에서도 무료 음료수가 계속 시민들에게 전달됐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특이한 건 나눠주는 음식이 모두 제각각이었고 음료수 통에 담긴 음료 브랜드 역시 모두 달랐다는 점이었다. 전문 시위대는 보통 상자 단위나 도매로 식음료를 사서 나눠주기에 이와 같은 여러 브랜드 식음료는 일반적인 시위 현장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는 굉장히 독특했다. 여러 사람이 제각각 서로 다른 음료수를 사서 얼음과 함께 음료통에 넣고 갔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사람이 마시도록 누군가가 그냥 두고 간 것이었다.

어쩌다 이런 '품앗이'가 시작됐을까. 시작은 소셜 미디어 '스레드'에서였다. 누군가가 "집회 현장에 이런 물품이 필요해요"라고 올렸고 이를 지켜보던 불특정 시민이 퀵이나 쿠팡, 혹은 직접 배달로 현장에 물품을 건네며 시작됐다.

대전에 거주하는 한 22세 여성은 이날 물과 방석, 핫팩을 들고 서울로 와 현장에 모인 시민에게 나눠줬다. 그는 "스레드에 현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올리는 분이 계셨는데 그걸 보고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그냥 물건을 들고 서울로 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며 "할 수 있는 게 이거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거주하는 47세 여성은 "아침 일찍 스레드에 '선크림이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미스트와 같이 산 뒤 현장에서 햇볕에 직접 닿는 몇몇 분께 전달하고 왔다"며 매일신문에 영수증을 건네기도 했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독자 제공

그는 "햇볕이 너무 강해서 현장에 해병대 옷을 입고 큰 깃발 흔들던 분에게 음료와 선크림을 드렸다"며 "소박하지만 저처럼 챙긴 분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7일 오전 3시30분쯤 현장에 있는 불특정다수에게 누군가 배달한 음식이 전달되는 대화 장면.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독자 제공

불특정 다수의 요청과 지원이 품앗이처럼 계속 이어지자 아예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까지 만들어졌다. 매일신문은 이 채팅방에 직접 들어가 봤다. 익명의 오픈 채팅방으로 만들어진 '6/6 올림픽공원 물자 및 각 입구 인원 분포'라는 방에는 이미 900여명이 들어가 있었다.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7일 오전 3시30분쯤 현장에 있는 불특정다수에게 누군가 배달한 음식이 전달되는 대화 장면.

이 채팅방은 물품이나 음식을 보낸 누군가가 배달될 특정 위치를 말하면 이 물품과 음식이 필요하다고 했던 사람이 가지러 가는 이른바 '온라인 품앗이 연결 플랫폼'이었다. "배고프다"는 취지의 글이 올라오면 누군가가 통닭과 햄버거를 사서 보내며 핸드볼경기장 입구 번호를 배달지로 지목해 주는 식이었다. 특정 정당이나 단체, 시위대가 한다고 보기엔 너무나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됐지만 현장에선 그 어떤 모자람도 없어 보였다.

특히 이들은 쓰레기 처리에 유난히 집착했다.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곳으로 분리수거함을 만들어 쓰레기를 모으는 사람도 있었고 계속해서 쓰레기를 주운 뒤 부족한 쓰레기봉투를 요청하는 글도 수시로 올라왔다. 방이동 쓰레기 수거 시간을 알아보며 "왜 수거 트럭이 오지 않느냐"는 볼멘 소리도 나왔다.

실제 현장에선 쓰레기를 한 톨도 찾아 보기 힘들었다. 쓰레기통과 분리수거함이 여러 곳에 구비돼 있었다. 쓰레기통 옆에는 쓰레기통이 가득 차면 바로 묶어 정갈하게 쌓아두는 사람들로 즐비했다. 흡연구역 재떨이 주변에도 담배꽁초 하나 없었다. 한 청년은 "쓰레기가 널브러진 장면이 잠시라도 노출되면 특정 언론이 이를 카메라에 담아 이번 시민행동을 마치 의식 없는 집단의 이상한 시위로 그릴 게 뻔하다"며 "그런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 완벽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5일 오전 경찰은 물리력을 투입해 배 의원 지역구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함을 강제로 반출했다. 이 과정에서 한 경찰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잡아먹을 듯이 돌진하다 상관에 제지되기도 했고(맨 위) 한 노인은 질질 끌려 나오기도 했다(중간). 시민 여럿이 다치거나 심각한 인권침해 피해를 입었다. 독자 제공
6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풍경

이들이 집회에 나온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주로 투표용지 부족에 따른 '참정권 침해'를 말했지만 경찰의 과잉진압과 정치 상황도 한몫하고 있었다. 한 시민은 "경찰이 잠실 주민을 잡아 끌어내던 중 한 어머님이 절규하는 영상을 봤다. 경찰에 저항하다 이마가 찢어져 다친 청년 사진과 경찰이 할머니를 투표소 인근 아파트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경찰 영상도 보고 2019년 홍콩 사태가 떠올라 마음이 괴로웠다"며 "한국 경찰은 민노총에게 뺨을 맞아도 쇠뭉치로 맞아도 참기만 하지 않냐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고 했다.

5일 오후 5시55분쯤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있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독자 제공
5일 오전 경찰은 물리력을 투입해 배 의원 지역구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의 투표함을 강제로 반출했다. 이 과정에서 한 경찰은 일반 시민을 상대로 잡아먹을 듯이 돌진하다 상관에 제지되기도 했고(맨 위) 한 노인은 질질 끌려 나오기도 했다(중간). 시민 여럿이 다치거나 심각한 인권침해 피해를 입었다. 독자 제공

그러면서 "어제 상반된 배현진의 행동도 큰 몫을 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항한 시민 저항을 '소요'라고 부르곤 흰색 정장을 곱게 입고 한동훈을 수발한 뒤 도쿄 하네다공항에서 목격되지 않았나. 그녀의 상반된 어제 행동이 오늘 새벽부터 날 움직이게 했다"고 밝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왼쪽 위)과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위),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아래). 독자 제공
5일 오후 5시55분쯤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있는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독자 제공

처음 이곳에서 집회가 시작됐던 5일 이곳에 몰려든 건 황교안 자유와혁신 대표와 전한길 강사 등 특정 세력을 대표하는 인사였다. 이 때문에 이 집회가 특정 정치 집단의 잇속에서 벌어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왼쪽 위)과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오른쪽 위),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아래). 독자 제공

그런데 실제 현장에선 반복적인 자가검열과 내부점검으로 '재선거'라는 세 글자만 남기 시작했다. 이에 6일 늦은 오후부턴 다른 성향 정치인의 조용한 방문도 이어졌다. 특히 2020년부터 부정선거를 부인해 온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이 들어섰을 때 야유가 나왔지만 금세 수그러들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인파 속에서 앉아 있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피켓을 들고 시민 사이에서 '재선거'를 외쳤다.

그들은 단상에 서거나 목소리를 올리지 않았다. 바닥에 앉거나 그냥 시민과 함께 호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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