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미애 교수의 부부·가족 상담 이야기] 모든 것 포기하고 싶은 소년가장

저는 10대 후반의 소년가장입니다. 아버지 죽음과 동시에 어머니마저 개가를 한 후, 저희 남매는 가난한 할아버지와 살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밥 짓기와 설거지 등 가사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는데, 다른 친구들이 알까 두려워 소외된 생활을 했었습니다. 특히, 운동회와 소풍 때 제 손으로 김밥을 준비하고 나면 마음이 공허하고 허탈해서 죽고 싶을 때가 많았습니다. 더욱 힘든 것은 최근, 동생들이 엄마를 찾아달라며 떼를 쓰고, 심지어는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어울리며 일탈을 시작한 일입니다. 제 앞길을 준비하는 것만도 힘 드는데 언제까지나 철없는 동생들과 병든 할아버지까지 부양해야 하는지, 저의 가난한 환경에 분노와 고통을 느끼며 가출하고픈 충동을 느낍니다. 그러나 잠든 어린 동생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창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시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동생들과 조부를 부양하면서 남모르는 외로움과 고통으로 살아온 귀하의 사연이 안쓰럽고도 눈물겹습니다.

세상을 뜨신 아버지의 빈자리에, 어머니마저 재혼해 귀하의 곁을 지켜주지 않으셨으니 어린 장남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며 실망스러운 시간을 겪었을까요. 이런 사정으로 어린 귀하의 입장에서는 부모로부터의 '심리적 유기'(버림을 당하다)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그 결과 낮은 자존감과 자신의 무가치함으로 때론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우울감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어린 몸으로 부모 역할까지 하고 있는 마당에 동생들의 탈선 행동은 매우 실망스럽고 허탈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삶을 위해 주어진 일들을 능력껏 수행하는데, 그 힘은 부모가 줘야 합니다. 그 힘은 '내면의 소리'로서 부모가 아이에게 "괜찮아, 좋아질 거야, 우리가 있잖아" 하는 희망 가치를 저장시켜 둔 '무의식적 심리자원'을 의미합니다. '내면의 소리'가 저장된 사람은 삶에서 고통스러운 일을 당할 때마다 이 재료들을 꺼내 쓰며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법입니다. 그러나 귀하는 부모로부터 받은 내면의 소리가 부족하여 살아가는 데 더욱더 힘들었을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그간 귀하도 행복하고 감사한 기억들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 기억들을 찾아 '내면의 소리'를 재구성하여 귀하도 자신의 삶에 윤기를 더해 가실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공평하답니다. 'No, pain. No, gain.'(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란 말 아시지요? 귀하의 삶이 지금은 무척 힘들고 좌절되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그 하루하루가 쌓이면 반드시 '되돌림'의 보상이 올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의 고통은 장차 귀하가 크고 원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 관점의 변화'도 갖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동생들에게도 형이자 오빠로서의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필요가 있겠습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 분담하고 현실을 직시하여 이 상황을 잘 받아들이고 3남매가 웃으며 돌아볼 수 있는 청소년기가 되도록 충분한 대화를 갖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고달팠던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견뎌봅시다. 고통도 나의 한 조각이기에 그것을 묵묵히 견디고 나면 저 미래에는 귀하를 위해 보석같이 빛나는 큰 선물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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