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오후의 고양이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나른한 오후, 우리 집엔 봄기운보다 더욱 졸음을 불러일으키는 두 존재가 단잠에 빠져 있다. 햇볕이 한창인 한나절 시간은 본디 태어나길 야행성으로 태어난 고양이에겐 한밤중이나 다름없다.

이 시간만큼은 말 거는 것을 좋아하는 앨리샤도, 간식을 달라고 나에게 다가와 말없이 시위하는 체셔도 나와 함께 한 집에 함께 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집안은 고요하다. 이 시간의 고양이들은 집안을 정리하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도, 퉁탕거리는 시끄러운 청소기 소리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고 꿈나라 여행을 즐기며 오로지 숨을 쉬기 위해 움직이는 배만 연신 볼록거린다.

가끔 몸을 일으켜 고양이 기지개를 쭉 펼치기도 하지만 그러고 나선 방향을 바꾸어 다시 웅크린 채 해 질 녘까지 잠을 청한다. 이렇게 평화롭기 그지없는 집에 고양이들과 나 홀로 머물고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조용하지만 고독하지 않은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고양이가 자는 모습은 정말 사람의 수면과 다를 바가 없다. 체셔는 심지어 가끔 코를 골며 자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고양이의 잠이 사람의 잠과 완전히 같진 않다. 고양이의 잠은 이를 지켜보는 내게 있어서는 단순히 '잠을 자고 있다'를 떠나서 다양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선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는 내게 따뜻함과 나른함을 선사한다.

따뜻하고 폭신해 보이는 모습으로 입가에 미소까지 곁들인 채 잠든 고양이의 모습은 춘곤증이나 식후 졸음보다 훨씬 강력하다. 그리고 잠자는 고양이의 귀는 내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시끄러운 소리들에도 반응하지 않고 자는 고양이지만 그 와중에도 이름을 부르면 신기하게도 귀만 살짝 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보는 것이다.

게다가 자고 있는 고양이는 나에게 경건함을 느끼게도 한다. 숨 쉴 때마다 볼록거리는 고양이의 배는 귀엽기도 하지만 언제나 나의 반려동물이 숨 쉬는 생명체임을 잊지 않게 하는 중요한 증거로 내게 생명의 존귀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물론 한나절의 고양이가 늘 잠만 자고 있는 것은 아니다. 참 잘 자는구나 싶어서 보면 눈은 뜨고 있을 때도 많다. 깨어 있을 때도 잘 때와 마찬가지로 역시 꼼짝하지 않은 채 조용히 눈만 깜박이고 있다. 고양이 나름대로의 상념에 잠겨있을 수도 있고 명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 모습을 볼 때면 늘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학창시절 때부터 작은 소리 하나에도 고개를 획획 돌리는 탓에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혼나던 나였기에 더욱더 고양이들의 그 집중력은 대단하기도 하고 부럽다. 이렇게 생각에 잠긴 고양이는 나 역시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게 만든다. 고양이의 눈은 꽤 깊기에 그 눈동자를 들여다보게 되면 고양이의 명상에 대한 궁금증부터 시작하여 고양이와 나에 대한 생각, 다른 무궁무진한 여러 가지 상상들까지, 즐거운 생각의 나래가 펼쳐진다.

자취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는 부쩍 고독감을 느끼는 일이 잦았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싫어하고 붐비고 시끌벅적한 바깥보다는 집안에 있을 때 스트레스나 불안감으로부터 안도하게 되는 전형적인 내향성을 지닌 나였지만 타지에서 홀로 있는 것에서 오는 고독은 때론 나를 너무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 고독을 잊게 해 준 것이 바로 고양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외롭거나 쓸쓸한 마음이 일어날 때 고개를 돌리면 언제나 그곳엔 체셔와 앨리샤가 있다. 그리고 이들은 내게 고독함 대신에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고 행복한 상상들을 하게 만든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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