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경제의 개념과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인기 가수 싸이와 KBS의 개그콘서트를 창조경제의 모델로 언급해서 관련 부처가 그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다. 그런데 대학과 관련된 중앙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인력 공급과 지식 생산의 중요한 담당 축인데도 창조경제의 정책 마련에는 비교적 느긋해 보인다.
한국연구재단은 2012년 전국 대학의 연구 활동 실태를 조사'분석했다. 이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대학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10.8%로 미국, 일본,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낮았다. 캐나다와 비교해서는 4분의 1 수준이다. 이웃 국가인 일본(12.9%)과 비교해도 2% 포인트가량 낮았다. 국내 총 연구개발비는 증가하고 있으나, 그 가운데 대학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0.99%, 2010년 10.53%, 2011년 9.81%로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공공 재원으로 투자된 연구개발비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 2009년에 31.19%, 2010년 30.49%, 2011년 30.54%로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대학이 창조경제의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선진국과 비교하면 실망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산업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적 자본을 배출하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체가 사용한 연구개발비 비중은 주요국에 비해 높다. 2010년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체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74.3%로, 중국 73.3%, 미국 72.6%, 독일 69.9%, 프랑스 63.0%, 영국 62.0%보다 높았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대학과 기업의 연구개발비 비중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대학이 창조경제의 축으로 작동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얼마 전 대구를 방문한 레이데스도르프(L. Leydesdorff) 교수는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학-기업 사이의 과도한 네트워킹보다 무릎 관절과 같이 유연하게 작동하는 분화(articulation)가 더 필요하다고 조언하였다. 나아가 대학을 지원하고 그 역할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부는 학술과 비즈니스 영역에서 대학과 기업의 역할 배분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신성장 이론으로 잘 알려진 로머(P. Romer) 교수도 미국의 성공 배경으로 시장과 과학 기구의 유기적 결합과 경쟁을 꼽았다. 사실 미국 대학들은 교육과 연구개발의 기능적 특화를 통해서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부합하고 있다. 소위 티칭스쿨(Teaching School)에서는 다양한 과목을 심도 깊게 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반면, 리서치스쿨(Research School)에서는 대학원생들과의 협업에 초점을 맞춘다. 리서치스쿨에서 대학원생들은 교수와 팀을 이루어서 논문 출판과 특허 생산에 집중한다.
사상 초유의 경제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EU 2020' 전략에서 하이브리드형 연구'혁신을 대학의 새로운 모델로 제시했다. 핀란드 SHOK, 덴마크 GTS, 스웨덴 VINN, 노르웨이 SFI/CRI, 아이슬랜드 COE가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카라야니스(E.G. Carayannis)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일컬어 '모드3' 지식 생산이라고 부른다. '모드 2'가 대학-기업-정부의 강한 연결을 강조했다면, '모드 3'에서 대학은 민간과 공공 영역을 넘어서 시민, 문화, 자연과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와 맞물려 선진국에서는 대학을 혁신하고 대학의 창조 역량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대학은 입학생이 감소하고 있는 데다 연구개발비마저 줄어들고 있어 창조경제의 주체로 도약하기엔 역부족이다. 창조경제가 싸이와 개콘과 같은 특정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머문다면 금방 사라질 정책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대학의 역할을 재정립하여 창조성을 녹이고, 발명을 촉진하고, 혁신을 가속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논의되는 BK21플러스 사업을 보면 '모드 3'에 대한 검토는 누락되어 있고 정부 지원금 나눠 먹기에만 집중하고 있어 안타깝다.
영남대 교수·아시아트리플헬릭스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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