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눈이 즐거운 그림문자 '팩토그램'…새로운 소통의 도구로

대구의 멋과 특성을 살린 픽토그램
대구의 멋과 특성을 살린 픽토그램
대구 공항내의 흡연실 안내 픽토그램
대구 공항내의 흡연실 안내 픽토그램
분실물 주의를 당부하는 픽토그램
분실물 주의를 당부하는 픽토그램

최근 청와대는 '넓게 듣겠습니다. 바르게 알리겠습니다'라는 내용의 국정홍보 슬로건과 이를 상징화한 픽토그램을 공개했다. 박근혜정부의 의지를 한눈에 전달할 수 있도록 귀와 입을 형상화 한 '소통 상징 픽토그램(pictogram)'을 개발해 적용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픽토그램이란 대중들에게 특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그림 문자. 정보를 보다 즉각적'함축적'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꽉 막힌 소통과 불통의 시대에 박근혜정부가 픽토그램을 대안으로 들고 나온 것이다. 대구 곳곳에도 픽토그램이 등장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픽토그램. 간단한 그림이 대구를 찾은 외지인과 외국인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자, 지역 상가와 손님을 이어주는 가교, 나아가 대구의 얼굴로 거듭나고 있다.

◆말과 글이 필요 없다

2015년 3월 22일 오전 대구공항. 제7차 세계물포럼(The 7th World Water Forum 2015)에 참석하기 위해 대구를 찾은 미국인 마퀴즈 씨. 이날을 전후로 일주일간 대구에서 열리는 물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20시간이 넘는 비행기 여행을 마다치 않고 아내와 10살 난 딸을 데리고 대구를 찾았다. 막상 대구에 도착하니 이국적인 풍경과 낯선 사람들. 더구나 한국말은 '안녕하세요' 밖에 못하는 터라 살짝 긴장이 됐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나서려는 순간. 어린 딸이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마침 국제선 도착장 앞에 각종 편의시설이 소개된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손쉽게 화장실을 찾아내고 딸을 화장실 앞으로 데리고 갔다. 딸이 여자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마치고 나오자 택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승강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인 만촌동 인터불고호텔로 향했다. 딸을 기다리는 동안 대기실 입구 관광안내소에서 집어든 대구관광지도가 큰 도움이 됐다. 지도에는 경찰서, 공원, 호텔 및 각종 편의시설이 픽토그램과 함께 상세히 표시돼 있었다.

인터불고호텔에서 체크인을 마친 마퀴즈 씨는 가족을 데리고 시내 관광에 나섰다. 택시기사가 데려다 준 곳은 봄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2'28기념중앙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여러 그림이 있는 안내판이 길을 막고 서 있다. 잔디와 신발. 강아지를 끌고 가는 사람,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 자동차와 오토바이 등 4개 그림이 있다.

'아하 잔디를 밟지 말고, 동물을 데려오지 말고, 쓰레기를 버리지 말고, 오토바이 타고 오지 말라는 말이군.'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생각이 통하고 의미를 알았다는데 괜히 뿌듯해진다. '세계는 하나다'(We are the world)는 말이 순간 튀어나왔다. 초행길이지만 대구여행에 자신감이 생겼다. 긴장이 풀리자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무는 순간. 딸이 갑자기 제지한다. 딸이 가리키는 것은 빨간 줄이 그어진 금연 표시였다.

공원을 이리저리 거닐다 동성로 구경에 나섰다. 엄청난 인파. 마퀴즈 씨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한국말을 못하는 데다 자칫 엄청난 인파 속에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걱정은 기우였다. 동성로 곳곳에는 동그라미에 물음표가 그려진 곳이 있었다. 마퀴즈 씨는 길을 헤맬라치면 이곳에 들러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한국어를 전혀 몰랐지만, 시내 관광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배가 고플 때면 숟가락과 포크가 그려진 가게에서 식사할 수 있었고, 배가 아프면 약국을 쉽게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 쇼핑몰에서도 불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입구에 있는 안내판에는 출입구와 엘리베이터 위치, 안내소, 매점, 약국 등을 상징하는 그림이 지도와 함께 상세히 표기돼 있었다.

◆픽토그램 속속 등장

마퀴즈 씨가 요즘 대구를 방문했더라면 어땠을까?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이미 공공시설을 비롯한 교통쇼핑시설, 공원은 물론 경기장에서도 한국어를 못하는 불편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픽토그램이 곳곳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대구공항에 마련된 관광안내소는 픽토그램으로 공항과 교통시설, 주요 관광지 등을 표시한 관광지도를 무료 배포하고 있다. 초행길이라도 대구 곳곳의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다. 특히 공항, 역, 터미널 등의 교통시설과 대부분 공공장소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나와 있다.

민간 부문에서의 확산 속도는 훨씬 빠르다. 약국이나 병원은 물론 음식점, 숙박업소의 간판에 어김없이 픽토그램이 등장했다. 동성로 등 도심 상가들도 앞다퉈 픽토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상가의 특성에 맞는 픽토그램을 자체 개발해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동성로 일부 카페에서는 카페에서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하나하나 그림 문자로 만들어 가게 앞에 내걸었다. 또 커피를 만드는 과정을 픽토그램화하기도 했다. 한눈에 이 가게가 무엇을 팔고 무엇을 서비스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픽토그램이 정착 단계에 이르는 데는 대구시의 역할도 컸다. 2011년부터 토종 픽토그램을 개발해 보급하고 있다. 대구만의 픽토그램 매뉴얼과 개별 픽토그램 파일이 저장된 CD를 케이스에 담아 배부하고 있다. 원한다면 누구나 구청과 협의를 통해 광고문구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다. 수성교 부근의 공인중개사 사무소 등에서는 지난해부터 대구시가 만든 픽토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대구은행 본점 맞은편 한 건물은 한눈에 가게의 특성을 알 수 있도록 픽토그램이 표시돼 있다.

강정원 대구시 공공디자인 담당은 "픽토그램을 활용하면 간판이나 공공시각 매체에 사용되는 글자 수를 줄여 보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다. 특히 복잡하고 의미가 모호한 기존 픽토그램을 대거 수정해 누구나 알기 쉽도록 제작해 인기다"고 했다.

◆대구만의 멋과 개성 '톡톡'

대구의 픽토그램은 토종이다. 지역의 정서와 대구만의 멋스러움을 담았다. 대구시는 2011년 국가표준으로 제정돼 있지 않은 17종을 새롭게 개발'보급했다. 또 국가표준 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34종의 픽토그램은 신규 픽토그램의 개발 콘셉트에 맞춰 일부 변형하거나 응용했다. 같은 픽토그램이라도 타 도시와 차별화를 꾀한 셈이다.

현재 국가표준으로는 시설안내 표지와 안전표지 등 총 335종의 픽토그램이 있다. 이 중 맹견주의, 인화물질 경고 등 안전과 관련된 14개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채택한 국제표준에 속해 있다. 따라서 이 픽토그램들은 국제기준 및 국가기준과 동일하다.

그러나 나머지 국가표준 중에서도 자주 사용되는 34종의 픽토그램은 인지도와 가독성을 고려해 일부 변형하거나 수정했다. 화장실의 경우 남녀가 팔을 내리고 있는 단순한 그림을 팔을 허리에 올리도록 설계해 생동감을 줬고 모양 역시 4가지로 다양화했다. 또 복잡한 약국모양을 단순화해 누구나 알기 쉽도록 했다.

시는 국가표준으로 제정돼 있지 않은 17종을 새롭게 개발했다. 분식점이나 패스트푸드 등 상업시설을 추가했고 한방병원, 치과, 동물병원 등 의료시설과 한복, 시장, 안경, 학원 등 지역의 특성에 맞는 픽토그램도 새로 만들었다. 기법 면에서도 다른 시'도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구 픽토그램' 개발에 참여한 여도환 대구한의대 교수는 "보수성과 강직함 등 대구만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굵은 선을 많이 사용했고 대구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도록 암각화 기법을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안철민 대구시 도시디자인총괄본부장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길을 찾고 생활정보를 찾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또 단순히 길 안내 수준에 그치지 않고 광고간판에 사용되거나 관광안내도에도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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