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직장의 신' 되기, 가업에서 길을 찾는 뜻은?

전공 바꾸고, 전문대 재입학, 멀쩡한 회사 그만두고…집으로 돌아오는 청년

대구보건대 치기공과 이채원 씨는 치기공사 자격증을 따 가업을 이을 예정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대구보건대 치기공과 이채원 씨는 치기공사 자격증을 따 가업을 이을 예정이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한방피부미용을 전공하고 있는 이아름 씨
한방피부미용을 전공하고 있는 이아름 씨
대구대 원예학과 4학년인 김요한 씨는 안정적인 직장생활 대신 허브 전문가의 꿈을 선택했다.
대구대 원예학과 4학년인 김요한 씨는 안정적인 직장생활 대신 허브 전문가의 꿈을 선택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은 330만 명을 헤아린다.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전공에 관계없이, 보수'처우가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되길 바란다. 부모들의 기대도 비슷하다. 올해 국가직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는 무려 20만 명이 몰려 평균 74.8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창업 또는 가업 승계를 목표로 전공을 바꾸는 대학생들도 있다. 일부는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했지만 다시 캠퍼스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른바 '돌취생'(돌아온 취업준비생)이다.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

◆자격증+α

고다영(29) 씨는 올해 2월 대구보건대 안경광학과를 졸업했다. 수석 졸업의 영예를 안을 정도로 성적도 뛰어나다. 국가자격증인 '안경사'를 취득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4년 전만 해도 그는 어엿한 호텔리어(hotelier)였다.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다시 대학문을 두드린 것이다. 안경점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고 씨는 "4년제 대학을 나와 취업까지 한 뒤 다시 공부하겠다고 하니 처음에는 가족들도 반대했지만 이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며 "월급은 아직 호텔보다 적지만 장래성과 준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또 "후배들에게도 평생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기를 권한다"며 "창업을 하면 취업보다 좋은 점도 많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학교 치기공과 3학년에 다니는 이채원(23) 씨는 아버지 이상준(48) 씨와 과(科) 동문이다. 부녀지간에다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지만 조만간 치기공사 자격증을 따면 아버지가 운영하는 기공소의 직원이 될 예정이다. 실습은 지금도 아버지 밑에서 하고 있다.

이 씨는 2010년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스포츠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2011년 대구보건대에 다시 입학했다. 이 씨는 "타이틀만 생각하고 수도권 4년제 대학을 선택했지만 전공을 살려 취업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 진로를 바꿨다"며 "처음에는 새로 배우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이제는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가 재미있다"고 했다. 20년 경력의 아버지 이 씨는 "자신만의 전문 분야가 있으면 사회생활을 하기가 아무래도 낫지 않겠느냐"며 "치기공과 동문 중에는 가업을 잇는 경우가 꽤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대학에만 '돌취생'이 있는 건 아니다. 대구한의대 대학원에서 한방피부미용을 전공하고 있는 이아름(25) 씨는 다른 대학에서 나노소재공학을 전공하다 3학년 때 이 대학에 편입했다. 피부미용사가 국가자격증으로 바뀐 게 계기였다. 부모님이 운영하고 있는 피부관리숍에다 한방을 응용, 차별화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이 씨는 "고교 졸업 당시 부모님이 피부미용 분야가 전망이 밝다고 권유하실 때는 솔직히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막상 대학 선배들이 취업 걱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또 "친구들도 처음에는 저의 결정이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이제는 저를 롤 모델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피부미용사는 자신의 시간을 관리할 수 있는 데다 수입 역시 회사원보다 많다"고 귀띔했다.

◆새로운 꿈을 찾아서

최근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대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중소기업 532개사와 대학생 2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대학생 56.9% 이상이 2천500만원이 넘는 초봉을 희망한다고 답했다. 반면 기업 74.8%는 대졸 신입사원에게 이보다 적은 초봉을 지급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학생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는 이유로 ▷낮은 급여 수준(25.4%) ▷불확실한 장래성(22.2%) ▷열악한 복리후생(14.3%) 순으로 꼽았다.

취업 준비 대학생 가운데 절반은 자신의 전공을 후회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전국 4학년 이상 대학생 4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응답자의 50.5%는 입사 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전공 선택을 후회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61%(244명)는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이나 졸업 유보를 신청해본 적이 있었다. 유형별로는 남자(96명)보다는 여자(148명)가, 자연'이공계열(81명)보다는 인문'상경계열(150명)이 졸업을 미룬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서 대구대 원예학과 4학년 김요한(29) 씨는 남다른 선택을 했다. 서울 명문 사립대학에서도 취업이 잘된다는 임상병리학을 전공하다 허브 전문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갖고 대학을 옮겼다. 김 씨는 주중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주말에는 부모님이 운영하는 허브 농장에서 일손을 돕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씨는 "속칭 명문대를 졸업한 뒤 안정적인 진로를 가는 친구도 있지만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이 멋져 보였다"며 "군 제대 후 허브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원예학과에 입학했다"고 소개했다. 또 "같은 과에 가업을 잇기 위해 진학한 친구가 많아 함께 정보를 교환하는 등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남이공대학교 변성민(22) 씨도 인생의 목표가 확 바뀐 경우다. 그는 대구의 4년제 대학에서 행정학을 배우면서 공직자의 꿈을 키웠지만 올해 이 대학 기계계열에 새로 입학했다. 전형적인 문과생에서 180도 다른 공대생이 된 셈이다. 변 씨는 "안정성 면에서는 공무원이 나을 수도 있지만 제조업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엔지니어의 길도 보람이 있을 것 같았다"며 "기계설계(CAD)를 전공해 가업을 이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업문화도 바뀌어야

이들처럼 화이트칼라를 꿈꾸고 1차 관문까지 통과했던 젊은이들이 다시 캠퍼스로 유턴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청년실업 60만 명 시대, 계약직 사원 800만 명 시대인 만큼 대학을 졸업하더라도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보수도 눈높이에 맞지 않기 십상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0년 대졸자 직업이동 경로 조사'에 따르면 대졸자들이 취업 후 실제로 받는 연봉 평균은 2천208만원이다. 희망 연봉 2천604만원보다 400만원가량 적다. 이른바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입직원 10명 중 4명은 3년 내에 직장을 옮긴다는 통계도 있다. 이처럼 무작정 취업했다가 처우 등에 실망, 이내 퇴사하는 젊은 층이 넘치면서 "회사에 오래 다닐 생계형을 뽑아야 한다"는 기업 관계자들의 푸념도 쏟아지고 있다.

가정환경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 진학을 할 때까지는 부모님의 직업을 막연히 바라보는 '방관자'에 그치지만 막상 자신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 무렵이 되면 현실적이 된다는 것이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속담처럼 아무래도 의지할 곳이 있으면 훨씬 하기 쉬운 법이다.

최영상(53) 대구보건대 입학처장은 이에 대해 "국가자격증을 딸 수 있는 전공이나 가업을 승계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학과에 대학졸업자'편입생들이 몰리고 있다"며 "확실한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우리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기업이 청년층의 의욕을 이끌어내기는커녕 페이퍼 복사 등 잡무만 떠넘기거나 불필요한 인간관계로 얽매어 사회생활 첫발부터 좌절시키고 있다는 비판이다.

'누구나 한때는 자기가 크리스마스트리인 줄 알 때가 있다. 하지만 곧 자신은 그 트리를 밝히는 수많은 전구 중 하나일 뿐이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 드라마 '직장의 신'에 나온 대사다. 수많은 전구 가운데 불과하다는 사실에 절망, 방황하는 청년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급 학교와 가정에서 진로 교육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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