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시티 대구 의료 100년] 어처구니 없는 수술

"위궤양이니 수술 해주시오" 환자 말만 듣고 시술 결국 숨져

1940년대 초 여전히 질병에 대한 인식은 극히 낮았고 인력과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치료가 이뤄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사진은 1950년대 이후 동산병원에서 수술하는 장면으로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1940년대 초 여전히 질병에 대한 인식은 극히 낮았고 인력과 장비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안타까운 치료가 이뤄지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사진은 1950년대 이후 동산병원에서 수술하는 장면으로 기사 내용과는 관계가 없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제공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동산기독병원에 당직의사로 근무(1940년 4월~1941년 3월)했던 권오석 박사는 당시 겪었던 환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자들이 등장하고,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수술'이 이뤄지기도 했다. 35세가량의 한 남자 환자는 왼쪽 폐에 폐렴이 생겼는데, 며칠 뒤 가슴부위에 고름이 고이고 부패가 일어나서 급기야 갈비뼈(늑골)가 썩어서 떨어져나왔다고 한다. '심장이 뛰는 모습을 밖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었고, 심장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까지 잘 볼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인데도 맥박과 호흡은 정상이었고 식사도 잘했다.'

응급실로 찾아온 40세쯤 된 한 농촌 임산부 이야기는 더욱 놀랍다. '두 달 전에 정상 분만했는데, 배가 심하게 붓고 오줌이 너무 자주 마렵다고 했다. 밤새도록 고민한 끝에 병명도 모르고 주임의사에게 인계했다. 내과로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시험 삼아 고무 도뇨관을 삽입했다. 이때 오줌이 줄기차게 흘러나왔다. 5천㏄를 배출하는 데 너무 시간이 걸려서 더 큰 도뇨관으로 바꾸었다. 무려 2만7천㏄를 배뇨하니 배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후 환자는 정상 배뇨를 시작했고 곧 퇴원했다.'

환자의 말만 듣고 위 수술을 했다가 결국 숨진 일도 있었다. '35세쯤 되는 남자인데, 명함에는 경남 어느 지역의 면장이라고 한다. 평소 건강해서 못 먹는 게 없는데 최근 소화불량이 왔단다. 스스로 "내 병은 위궤양이니 수술을 해주시오"라고 했다. 아무런 검사도 없이 수술을 시작했다. 전신마취 후 배를 열고 위를 봤지만 정상이었다. 이때 주임의사는 "기왕에 배를 열었으니 위장 문합술(위의 아래쪽과 십이지장 윗부분을 연결)을 한다"고 선언했다. 수술 후 환자는 매일 위액과 담즙을 1~2ℓ씩 구토했다. 2주 만에 크게 수척해졌다. 다시 배를 열어 확인하니 수술 부위나 위장 내부에 이상은 없었다. 새로 봉합 수술을 했지만 여전히 구토를 그치지 않았고, 30일 만에 3차 수술을 했다. 위장 문합부가 섞어서 이를 잘라낸 뒤 다시 봉합했다. 하지만 구토는 여전히 계속됐다. 처음 수술 후 35일 만에 결국 환자는 피골이 상접한 채로 사망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던 수술이었다.'

35세가량의 남자 인력거꾼의 위장에서 20㎝ 길이의 수양버들 가지를 꺼낸 수술 이야기도 있다. 당시엔 음식물이 식도나 위에 오래 남아있어서 체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칡넝쿨을 식도에 넣고 쑤시면 음식물이 빠져 내려간다고 믿었다. 이 환자는 바로 그런 요법을 받다가 버들가지가 부러져서 위 내에 남게 된 것이다. 무려 두 달가량 이렇게 지내다 보니 건강이 무척 악화됐는데, 결국 수술을 통해 끄집어낼 수 있었다. 가지 양쪽 끝이 위벽에 맞닿아 있었는데 위내벽 조직이 거의 죽은 상태가 돼서 구멍이 뚫리기 직전이었다. 길이는 무려 20㎝이며 한쪽 끝에 굵은 무명실로 단단히 묶어놓았다.

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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