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앞에서 '무한함'을 느낄 수 있을까. 유한한 전시장 공간, 그것도 정해진 물질로 만들어진 작품 앞에서 말이다.
50년 이상 '무한'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 작가가 있다. 세계적인 미니멀아티스트 타다아키 쿠와야마는 제한된 전시장, 그리고 작품으로 '무한'을 제시한다.
1950년대 말 일본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 쿠와야마는 1960, 70년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았다. 1990년 이후 벽에 베이클라이트나 알루미늄 등의 공업 소재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입체물을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설치작업을 통해 개개의 작품들이 전시 공간 전체로 확장하게 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갤러리 신라가 개관 20주년을 맞아 준비한 타다아키 쿠와야마의 전시는 독특하다.
전시장 안에는 티타늄으로 제작한 일정한 크기의 입체물 100여 개가 벽에 걸려 있다. 또 다른 전시장에는 세로로 길쭉한 티타늄 패널들이 역시 일정하게 걸려 있다. 그는 오래전부터 금속 물질을 이용한 작품을 해왔다.
"예술의 역사를 깨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작가가 조합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피했죠. 그러기 위해 공장에서 나오는 중립적인 금속 물질이 적당했어요. 색 자체는 중요하지 않아요. 색은 그 자체로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죠. 저에게 있어 그림은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계획하는 겁니다."
즉 드로잉이 아니라 플랜을 잡는 게 그의 작업이다. 그래서 전시 공간, 빛 등에 대한 태도가 대단히 엄격하다. 갤러리 신라도 이번 전시를 위해 전시실 앞으로 난 전체 유리창을 다 막는 공사를 했다.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작품 앞에 서면, 관람객이 움직이는 동선과 각도에 따라 금속은 다른 빛을 낸다. 그래서 작품이 놓여진 그 '공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두 가지 색깔 또는 두 가지 모양들이 연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어떤 공간을 완전히 새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내는 겁니다. 단순히 한 개의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무한 일부를 보고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없고, 전체가 공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빈 공간 역시 하나의 작품이라는 것.
실제로 그의 작품 앞에 서면, 반복적인 형태로 인해 이미 상상력은 전시장 벽을 넘어선다.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작품의 빛과 색을 느끼면 '관객이 봐야 할 고정된 시점은 없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만의 길을 걸어오는 데 집중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것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라는 생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처음부터 조각하는 사람도, 그림 그리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개념을 만들어내는, 나만의 작업을 하는 사람이었죠. 사람들이 제 작품을 이해하는 데 50년쯤 하고 나니 사람들이 이해하는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세대가 개념미술을 시작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크다.
갤러리 신라가 20주년을 맞아 초대하는 작가라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광호 대표는 "1992년 개관 이래 현대미술의 한 영역만을 20년간 지켜온 갤러리 신라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독특한 성격을 가진 화랑으로 자리 잡게 됐다"면서 "무엇보다 예술의 근본을 가장 잘 지켜가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엄선해 선보여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053)422-1628.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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