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아침 봄바람에 간혹 숨어 있는 찬 기운이 아주 좋아 고개를 한껏 쳐들고 폴짝폴짝 뛰어오른다. 우리는 그렇게 바람과, 꽃내음과, 친구들의 웃음으로 부풀어 오르는 즐거움을 품고 학교로 간다. 학교에 다다를 즘에는 앞서 걸어가는 커다란 뒷모습을 어김없이 만난다. 옆구리에 낀 서류 봉투, 그리고 낡은 구두에 앉은 뽀얀 먼지로 멋을 내고 출근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이다. 마지막 장면은 '아침밥 마이 묵었냐'라며 옆을 스쳐 지나가시던 자전거 탄 선생님의 차지다. 자전거가 일으키는 자그마한 먼지는 포근함마저 느끼게 하고 우리는 자연스레 흥얼거린다.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지난 4월. 대구시민생명축제 및 대구자전거대축전에 참가해 자전거를 탈 때, 느닷없이 눈앞에 떠오른 어릴 적 등굣길 기억이다. 녹색성장을 주제로 한 행사에 참가해 이런 생각을 한 것이 민망하여 금방 지우긴 했지만 입가의 미소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시절, 많은 선생님들은 학교와 멀지 않은 곳에서 생활하고 계셨으며 걷거나 자전거로 출근을 하셨다. 선생님들은 우리의 이웃이었다. 비록 편리하지 못한 교통으로 인한 것이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마을 곳곳에 계신 선생님의 존재는 마을의 분위기에 제법 영향을 준 것 같다. 거나하게 취한 동네 아저씨는 선생님 앞에서 화들짝 놀라 몸을 가누었으며, 다툼이 벌어졌다가도 선생님께서 나타나시면 화해하는 척이라도 했으니 말이다. 학교와의 심리적인 거리도 멀지 않았다. 어른들의 중요한 행사 장소는 학교였으며 학교의 행사는 곧 마을의 행사였다. 마을별로 가마솥을 걸고 불을 지피면서 시작된 운동회에서는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상 받을 때나 올라갈 수 있는 신성한 조회대 위에서 어른들의 흥겨운 춤사위가 넘실댔다. 물론 그 그림 속에는 선생님들도 계셨고 한쪽 귀퉁이로 밀려난 우리는 섭섭하기는커녕 더욱 신이 났었다. 우리는 분명 '행복'했다.
누구나 자신과 관계된 다른 사람들이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심리적인 평안함을 얻는다. 아이들은 특히 그러하다. 부모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부모와 선생님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아이들은 한없는 '평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하늘 같은 선생님과 부모님이 한동네에서 생활하고, 함께 어우러져 춤을 추며 웃고 계신 모습은 아무런 위로나 칭찬의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그 어떤 명작 동화보다도 정서를 풍부하게 하듯이 말이다.
올해 우리 교육청에서는 '우리 마을 교육공동체 구축'과 '학부모 역량 개발'을 열심히 추진하고 있다. 전자는 학생 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개별화된 교육을 제공하고 안전한 교육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지역의 여러 단체들이 함께 노력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학부모들의 건전한 교육관 정립과 교육 능력을 향상시켜서 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교육을 되살리기 위함이다. 재능, 자원,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 기부가 이어지고 학부모를 위한 강좌마다 참여자가 넘쳐난다.
아이들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이런 정책들도 사람들 간의 좋은 관계가 먼저이다. 모든 사회의 구성원들이 학교와 더불어 한마음 한뜻이 되는 좋은 관계를 보여주는 것, 부모 간이나 부모와 선생님 사이에 좋은 관계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힘을 얻는다. 특별한 무엇을 해주기도 전에 아이들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아쉽게도, 마음의 여유가 없이 바쁘기만 한 요즘, 이런 좋은 관계를 엮어가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손을 잡자고 외치며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구심점이 필요하고 교육청, 학교, 나아가 한분 한분의 선생님이 그 숭고한 역할을 시작하고 있다.
곧 스승의 날이다. 따뜻한 감사의 인사말이 담긴 한 줄의 문자 메시지를 부모와 선생님이 주고받아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아이에게 그 문자를 보여주자.
'선생님 잘 지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부족한 저를 응원해 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단 두 줄의 문자에서 느끼는 아이들의 행복감이 얼마나 클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우동기/대구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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