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문화재 낙서

2005년 뉴욕과 시카고, LA 등 미국 주요 도시에 게임기를 든 사람을 그린 낙서가 등장했다. 똑같은 양식에다 게임기가 일본 전자 메이커 소니 제품이라는 점 등에서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추적 결과 소니가 자사 제품 홍보를 위해 거리 예술가를 고용해 한 낙서(graffiti)로 밝혀지면서 여론이 들끓었다. 몇 년 앞서 IBM도 낙서를 활용한 게릴라 홍보 전략을 썼다가 10만 달러가 넘는 벌금과 청소 비용을 문 적이 있다.

대머리에 길쭉한 코, 양손을 담 위에 가지런히 걸친 모습에다 '킬로이 여기 왔음'(Kilroy was here)이라는 글귀로 유명해진 낙서. 2차 대전 당시 유럽 각지에서 크게 유명세를 탄 '킬로이 두들'이다. 두들(Doodle)은 '끄적거린 낙서'라는 뜻이다. 코믹한 캐릭터로 인기를 모은 킬로이 두들처럼 시대상과 유행을 반영한 낙서는 그래피티의 고전이라는 점에서 그냥 애교 수준이다.

1989년 독일 베를린 장벽이 헐릴 때 가장 먼저 현장을 접수한 것은 낙서라고 할 정도로 그래피티의 위력은 대단하다. 독일 국영 철도 회사 도이치반은 최근 기차역에 소형 무인기를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낙서 때문에 지난해 760만 유로의 재산 피해를 입은 도이치반이 낙서가들이 출몰하는 역에 무인기를 띄워 감시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담벼락이나 열차, 빌딩에 대한 낙서는 약과다. 최근 중국 10대 청소년이 저지른 룩소르 신전 낙서로 이집트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판 트위터에 룩소르 신전 벽면 부조에 쓴 '丁○○到此一游'(아무개 왔다 감)라는 낙서 사진이 올라온 뒤 인터넷에 급속히 퍼지면서 국제 문제로 비화했다.

그래피티를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는 분위기도 있지만 범법 행위로 간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낙서 행위로 인한 비용만도 천문학적이다. 영국은 한 해 15억 달러, 독일도 7억 달러를 낙서 방지와 복구 비용으로 쓰고 있다. 미관 보호 규정이 엄격한 싱가포르의 경우 낙서 행위에 대한 처벌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최대 8대의 태형에 처할 정도다.

우리도 더 이상 낙서 무풍지대가 아니다. 몇 해 전 울산 천전리 암각화 낙서가 좋은 사례다. 한 고교생의 낙서로 밝혀지면서 허술한 문화재 관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드셌다. 일본 여대생들의 낙서로 문제가 된 피렌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나 룩소르 신전 꼴 나지 않도록 신경 바짝 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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