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내가 가슴에 대구 명덕국민학교 교표를 붙이고 다니던 꼬마였을 때, 누나와 연애를 하던 지금의 자형은 미래의 처남을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그랬는지 종종 나를 중국집으로 데려갔었다. 자형은 비싼 걸 시켜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항상 짜장면 곱빼기를 시켰다. 짜장면 외의 메뉴를 모르는 탓도 있었겠지만 짜장면보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땐 지금의 몸무게 반도 안 나갔지만 짜장면 그릇에 얼굴을 박고 입가에 짜장을 다 묻혀가면서, 지금은 다 먹지도 못하는 곱빼기를 순식간에 다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뭔가 아쉬웠는지 아직 남은 누나의 그릇을 입맛을 다시면서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런 추억들과 함께한 짜장면을 보고 국립국어원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자장면'으로 쓰라고 하고, 짜장면으로 쓰는 사람은 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 무식한 사람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중국집 사장님들은 대륙의 기상을 가졌는지, 대부분 꿋꿋하게 짜장면이라고 썼다. 가끔 자장면으로 써 놓은 곳을 볼 수 있기도 한데, 자장면이라고 하니 왠지 MSG와 카라멜 색소(표준어는 캐러멜 색소이지만)가 들어가지 않은 착한 음식 같은 느낌은 들지만, 우리의 추억과 함께했던 그 까맣고 반들거리며 보는 것만으로 군침이 돌게 하는 그런 음식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쓰라고 한 것은 외래어 표기법 원칙과 관련이 있다. 우리말은 외국말과 다르기 때문에 듣기에 따라서 조금씩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file'을 누구는 '파일'로 쓰고, 누구는 '화일'로 쓰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길 뿐만 아니라 국어 자료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것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표준어 규정과 더불어 외래어 표기 규정도 두고 있는데, 짜장면의 경우는 외래어 표기 규정 제1장 4항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를 적용한 것이다. 이 규정에 의해 실제 발음은 '까페', '빠리'에 좀 더 가깝지만 '카페', '파리'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까 짜장면도 중국어 짜지앙미엔(炸醬麵)에서 온 것으로 보고 규정을 적용하여 자장면, 혹은 차장면 중 하나로 표기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짬뽕은 왜 '잠봉'이나 '참퐁'으로 쓰지 않나? 짬뽕은 외래어가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어진 말로 보기 때문에 외래어 표기법 규정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짜장면에 대한 논란이 만들어진 근본은 규정의 잘못이 아니라 짬뽕과 별다를 바가 없는 짜장면의 연원을 중국에서 찾으며 무리하게 외래어로 분류한 데서 생긴 것이다. 2011년 국립국어원에서는 그런 무리함과 언중들의 거부감을 인정하였고, 짜장면은 25년 만에 표준어의 지위를 회복했다.(자장면과 복수 표준어) 한국인들의 삶과 함께하면서 수많은 이야기들과 풍부한 연상을 만들어낸 말은 외래어 자장면이 아니라, 우리말 짜장면이기에 이 조치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짜장면을 우리 음식, 우리말로 생각한다면 자장면은 버리는 것이 옳다.
민송기<능인고 교사·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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