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어야 시작도 있다/박찬호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
LA 마크가 있는 파란 모자를 쓴 동양 청년이 야구 경기장에 등장한다. 그는 마운드에 서서 모자를 벗고, 심판을 향해 90도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숨을 한 번 고른 후, 있는 힘껏 공을 던진다. 시속 161㎞의 강속구를 던지던 대한민국 첫 번째 메이저리거가 됐던 '박찬호'다.
이제 불혹이 된 투수 박찬호는 마운드를 떠났고, 그의 손에 더 이상 야구공은 없다. 허전하고 먹먹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내려놓고,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데 익숙하다. 최고의 자리에 있던 시절보다는 힘들고 주저앉았을 때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누군가 단점을 말해주면, 앞으로 고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찬호가 중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장과 현재 지니고 있는 스마트폰에는 자신의 신념과 생각이 가득하다. 왜 야구를 해야 하는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끝은 무엇이고 시작이란 무엇인지. 거기에는 야구선수 이전에 한 인간으로, 인생의 커다란 굴곡을 경험한 한 남자가 있다.
이 책은 그러한 박찬호의 글들이 모여 만든 대한민국 첫 번째 메이저리거의 눈물, 인내, 내려놓음의 기록이다. 또한 제2의 인생을 앞둔 한 남자가 말하는 지난날에 대한 쑥스러운 고백이자 미래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박찬호는 부족했던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사랑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그동안 배운 것들을 마음껏 전해주겠다고 말한다. 한국, 한국 야구, 한국 사람들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해나가겠다고. 그렇게 소중한 것을 떠난 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는 박찬호의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320쪽, 1만3천원.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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