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민들은 식민 지배를 통해 우리를 수탈한 일본을 용서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웃해 있는 나라끼리 영원히 원수로 지낼 수도 없는 것이 현실. 1951년부터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5차례에 걸쳐 회담이 진행됐지만 서로 의견이 엇갈려 협상은 번번이 결렬됐다. 우리가 요구한 것은 식민 지배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배상인 데 반해 일본은 개인 배상에 집중한 탓.
정통성이 취약했던 박정희정부는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가 시급하다고 판단해 물밑 협상을 진행했다. 공장을 세우기 위해서는 일본으로부터 들여오는 배상금과 차관이 필요했던 데다 군사정변으로 들어선 정부인지라 일본의 지지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일본 역시 한일 국교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박정희정권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해 환심을 샀다. 미국도 소련의 남하와 동북아 안정을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물론 반대도 극심했다. 협상 창구는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일본의 오히라 마사요시(1910~1980) 외무장관. 수차례 협상 끝에 1965년 오늘 한일협정이 체결됐다. 그때 김종필은 총리였고 오히라도 이후 일본 총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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