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격동기 비운의 장군, 장도영

1961년 오늘 박정희 소장이 이끄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혁명내각 수반직에 있던 장도영 중장 등 44명을 반혁명 혐의로 구속했다.

이날 구속된 장도영 중장은 한국 현대사 격동기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군부 내 주도 세력이 아니면서도 5'16의 내용과 전후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핵심 인물로 꼽힌다.

5'16 당시 육군참모총장이던 그는 쿠데타 직후 혁명 세력에 의해 한때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부 장관과 내각 수반으로까지 추대됐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이들 자리에서 해임된 뒤 중장으로 예편했다. 몇 달 뒤에는 반혁명 내란 음모 혐의로 기소되는 곡절을 겪었다. 1962년 무기징역을 받았으나 형집행 면제로 풀려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 아닌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다.

1993년까지 웨스턴 미시간대에서 교수로 지낸 그는 은퇴 후 부인과 함께 플로리다에 살다 2012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한국을 떠나온 뒤 2001년 회고록을 낸 것 외에는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연락을 거의 끊고 살아왔다. 격동기의 중심과 변방을 오고 간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로당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어려움에 빠졌을 때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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