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경찰서에 폭탄 던진 항일투사 최경학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최경학은 부산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의 판결언도를 받은 후…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의 언도를 받고 상고를 하였으나 기각이 돼 하는 수 없이 아침 이슬과 같은 목숨이 오직 교수대의 운명을 기다리고 대구 감옥에서 철창의 생활을 하며 오던바 지난 팔일 오후 세시에 대구감옥에서…사형을 집행하였다는데 최경학의 생명은 교수대에서 십삼분 만에 끊어졌다더라.'(동아일보 1921년 7월 12일)

빼앗긴 조국 산하와 말살된 민족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가 붙잡힌 항일투사 최경학(崔敬鶴·?~1921)은 1921년 오늘 삶을 마감했다. 밀양에서 태어나 수봉(壽鳳)이란 다른 이름을 가졌던 그는 1910년 나라를 잃자 중국 각지로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길림성에 있을 때 의열단(義烈團)에 가입, 폭탄 제조법도 배웠다. 국내에서 지하 독립운동을 벌였던 그는 고향에 돌아와 1920년 9월 의열단원 박재혁(朴載赫)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소식을 듣고 그해 12월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 거사에 나섰다.(박재혁도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단식하며 2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폭탄은 불발돼 달아나다 경찰서 인근 민가에 들어가 자결을 시도했으나 경찰에 붙잡혔고 사형이 집행돼 대구에서 목숨을 잃게 됐다. 정부는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그를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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