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31>웃음이 살아있는 휴식의 고장, 청도

인형으로 빼곡한 0번 버스, 웃음 싣고 달리는 고향길

청도는 대구시민들의 귀촌 1번지이자 편안한 쉼터다. 가깝고 경치 좋고, 물과 공기가 맑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청도는 구불구불 곰티재를 기준으로 산동과 산서 지역으로 나뉜다. 대구시민들에겐 인접한 각북면과 풍각면, 화양읍, 청도읍 등 산동 지역이 심리적'물리적으로 가깝다. 이름난 관광지나 명소도 대부분 산동에 몰려 있다. 경산과 청도는 맞닿아 있지만 갈 수 있는 시내버스가 없다. 대구 남부정류장에서 청도군 풍각면까지 가는 0번 버스가 매일 10회 운행한다.

◆인형과 함께 달리는 0번 버스

오전 9시 20분 청도군 풍각면으로 출발하는 0번 버스에 올라탔다. 노란색 버스에 올라서자마자 수백여 개의 인형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전석부터 앞유리창과 버스 벽면, 천장, 기둥을 따라 귀여운 곤충과 곰, 강아지, 호랑이, 캐릭터 인형까지 빼곡하다.

버스를 인형 천국으로 만든 건 손중기(59) 기사다. 외모부터 심상치않다. 주황색 티셔츠에 두 귓불에는 작은 귀고리가 반짝였다. 오른쪽 팔에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팔찌를, 손에는 분홍빛 매니큐어를 칠했다. "아기자기한 걸 좋아해요. 옷도 꼭 색깔 있는 옷만 입고요. 색다르게 꾸미는 게 좋아요." 그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얼버무렸다. 손 씨가 버스 안에 인형을 달기 시작한 건 6년 전부터. 회차지에서 심심풀이 삼아 해보던 '인형 뽑기'에서 건진 인형을 버스 안에 달아맸던 것이 시작이었다. 그렇게 달아둔 인형만 200여 개가 넘는다.

자신의 1t 화물차는 물론, 집안과 아이들 방에까지 인형이 천지란다. "인형 뽑기를 하면 승률이 적어도 50%는 됐어요. 정확하게 돈을 얼마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모았으니까요." 인형을 달아두는 건 여간 정성이 아니면 못할 일이다. 더럽거나 찢어졌는지 하나하나 살피고 때가 타면 빨아서 다시 달아야 한다. 정말 좋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다.

"승객 모두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신기해합니다. 인형차 왔다며 반겨주기도 하고." 길을 걷다 보면 모르는 사람이 인사하는 경우도 있다. 손 씨의 버스를 타 본 승객들이다. "어디서 술 한잔하면서도 욕도 못 하고 짜증도 못 내요. 다들 알아보니까. 저절로 정신 수양이 되는 것 같아요. 하하."

◆수몰민 마을의 변신

골 깊은 팔조령을 넘어 1시간 10분을 달리면 청도군 풍각면이다. 마침 풍각버스터미널에서 문을 닫고 출발하려는 수월행 풍각 순환버스를 잡아탔다. 성곡댐을 휘돌아 10분 정도 달리면 성곡리 성수월마을이다. 이곳은 8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외딴 시골 마을이었다. 성곡댐이 조성되면서 원래 마을은 수몰됐고, 23가구만이 댐 인근으로 이주했다. 마을의 옛 흔적이라곤 인공섬 위에 심은 400년 된 마을 당산나무가 전부다.

고향을 떠나지 못한 주민들은 당장 먹고살 일을 걱정했다. 사과나무 대신 미나리를 심고 정부 지원을 받아 각종 체험활동을 할 수 있는 그린투어센터도 지었다. 하지만 단순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희망이 없었다. 고민이 깊던 차에 주민 박성기(50) 씨가 나섰다. 박 씨는 당시 청도에 살고 있던 전유성 씨에게 코미디극장을 세우자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무던히도 따라다니길 2년여. 마음을 움직인 전 씨가 2010년 코미디시장 2기생을 7년 만에 모집해 이곳에 학교를 열었다. 그린투어센터에는 주말마다 개그 지망생들이 머물며 춤과 노래, 마술 등을 배웠다.

이들이 무대에 오를 공연장이 필요했다. 정부와 지자체를 설득했고, 13억원의 지원을 받아 철가방 모양의 코미디극장을 지었다. 매일 공연이 열리는데다 전유성의 유명세까지 타면서 마을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그린투어센터의 부속식당에서 국밥과 비빔밥 등을 팔고 체험 프로그램을 연계해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해 성수월마을과 코미디극장을 찾은 이는 8만여 명에 이른다. 부속식당은 마을 주민들이 키운 농작물과 각종 양념류를 구입해 식재료로 사용한다. 일하는 직원 5명도 모두 주민들이다. 미나리 등 특산물 장터도 마련하고 마을 주변에는 몰래길도 조성했다. 마을이 살아나면서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13가구가 귀촌을 했고 지난 5월에는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박성기 마을운영위원장은 "현재 코미디 공연 관람과 체험학습을 모두 즐기려는 방문객들이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며 "카누 체험장 등 다양한 레저 상품도 개발해 다양한 수익원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이 어우러지는 철가방극장

공연 시작 1시간 전, 극장 안에서는 배우들이 연습에 한창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거듭 외치기도 하고, 지팡이를 들고 무대 위를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무대 뒤편 분장실에서는 배역에 맞춰 직접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갈아입었다. 얼굴에 몇 차례 붓질이 오가고 옷을 챙겨입으니 금세 할아버지로 변신. 느슨했던 긴장감은 바람잡이가 나서는 공연 10분 전이 되자 팽팽해졌다. 각자 무대에 나설 차례를 점검하고 빠진 소품은 없는지 점검했다. 관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각 코너는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객석 의자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튀어나오거나 무대 뒤편이 열리고 자연을 배경으로 줄타기를 가장한 개그도 펼쳐진다. 80분간 무대를 오르내리던 배우들은 마지막 코너가 끝나고 관객들과 사진 촬영을 마친 뒤에야 겨우 한숨을 돌렸다.

단원들의 하루는 길다. 매일 오전 8시에 기상해서 아침을 먹은 뒤 10시쯤 극장에 도착한다. 이후 코너별로 연습을 마친 뒤 무대에 오르고 아이디어 짜기에 열중한다. 외국 영화 등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따오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행동이나 상황을 인용하기도 한다. 다양한 책을 읽으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과연 우리가 봐서 웃긴 장면이 남들이 봐도 웃긴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죠. 서로 잘 아니까 웃는 경우도 있거든요. 서로 아이디어를 냉정하게 평가해요." 코미디시장 3기 반장인 최형승(28) 씨의 설명이다. 연기 경력 10년차라는 옥심이(30'여) 씨는 "대학로에 비해 무대에 오를 기회가 많고 관객들의 연령층이 다양해 전 세대의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역사와 맛이 살아있는 청도

풍각면에서 청도읍성이 있는 화양읍까지는 15분 남짓 걸린다. 조선시대 관공서가 몰려 있던 화양읍은 돌아볼 만한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쓰이던 도주관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화양초교 안에 동헌이 있다. 뒷길로 돌아 오르막을 오르면 동산저수지 곁 화악루를 만난다.

임도로 내려와 청도향교를 둘러본 뒤 5분 정도 걸으면 청도읍성이다. 청도읍성은 고려시대부터 있던 성을 조선 선조 때 다시 쌓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헐렸던 것을 새롭게 복원 중이다. 동문 앞에는 조선 숙종 때 만들었다는 석빙고가 있다. 전국에 남아있는 석빙고 6곳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빙고에서 성벽을 따라 북문이 있는 공북루 쪽으로 돌아가면 둥근 연못이 나온다. 연꽃이 피었을 시기라면 더없이 아름다웠을 터다.

화양읍사무소 건너편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5분 정도만 가면 청도읍이다. 군청소재지인 이곳에는 맛집이 꽤 숨어 있다. 청도역 바로 옆에 있는 추어탕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의성식당이다. 맑은 국물과 우거지가 잘 어우러지는데 미꾸라지와 민물고기를 갈아 만드는 잡어탕에 가깝다. 길을 건너 공영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면 할매김밥이 있다. 매콤하게 양념한 단무지를 넣고 둘둘 말아 파는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청도시장 뒤편 옹치기치킨도 유명하다. 오경통닭 박연옥(77'여) 씨가 직접 개발한 찜닭이다. 양념장을 발라 초벌로 익힌 뒤 숙성시키고 고추기름과 양념장을 넣어 다시 조리는데 마지막 양념에 고추를 넣어 마무리한다. 매콤달콤한 맛에 닭살 깊숙이 양념이 배어 있는 점이 특징. 야채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점도 특이하다. 박 씨는 "'옹치기'라는 이름은 통째로 삶은 닭이 웅크리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였다. 하지만 요즘은 먹기 불편하다는 손님들이 많아 토막 낸 닭을 쓴다"고 했다.

글'사진 장성현기자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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