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결혼이 여자한테 불리하다며너 왜 못해안달?

모던하트/정아은 지음/한겨레 출판 펴냄

헤드헌터로 일하는 37세 여성과 그녀의 주변 인물들 삶을 그린 세태소설'모던하트'가 출간됐다. 2010대 직장풍속도, 연애, 가족과 결혼생활, 슈퍼맘의 비애, 학벌사회의 덫 등 한국사회의 못마땅한 민 낯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나(김미연)의 위층에 사는 젊은 부부는 서울 시내 요지에 30평대 아파트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하나는 새 아파트고 다른 하나는 재개발로 연일 입방아에 오르는 아파트다. 그 돈이면 넓고 쾌적한 집에서 살 수 있지만, 그들 부부는 어린 아들과 함께 12평대 전셋집에서 산다. 전 재산을 끌어넣고 대출까지 내서 장만한 아파트의 값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너무 올라 재개발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위층 여자는 말한다.

'전 20억 될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20억원이라는 미래의 전 재산과 기회비용을 저당 잡히고, 온갖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위층 여자의 꿈은 '욕심'에 눈먼 21세기 한국인의 현주소다.

나의 직업은 헤드헌터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직하라고 들쑤시고, 사람들은 이직을 위해 나를 만난다. 그들은 더 나은 돈벌이가 있다면 언제든 직장을 옮길 각오가 돼 있다. 나는 그들이 이직할 때 발생하는 '커미션'을 얻기 위해 '지옥'에라도 그들을 보낼 수 있다.

김재광이라는 사람은 내 소개로 E뱅크에 서류심사, 1'2차 면접, 임원면접, 연봉협상까지 모두 끝냈지만, 출근 하루 전날 E뱅크 입사포기를 선언한다. 비전이 없다는 이유로.

"솔직히 E뱅크 가봐야 한 달에 200~300 받을 텐데 그렇게 벌어서 언제 돈 모으겠습니까?" 김재광의 비전은 연봉 1억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라이프플래너다. 그에게 직업의 가치는 오직 돈으로 재단된다.

엄마는 딸만 둘을 낳았다. 동생은 결혼했고,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어느 명절날 엄마는 꾹꾹 눌러온 불만을 사위에게 터뜨린다.

"반은 친가, 반은 외가 핏줄이라면서 왜 명절 때는 우리 집에 안 오나. 명절 연휴 다 끝나고 밤에 와서 달랑 자고 가면 그게 오는 건가?"

엄마뿐만이 아니다. 시집간 딸(내 동생)은 부부간의 말다툼을 꾸짖는 아버지에게 "제가 뭐 어쨌다고 저한테만 뭐라고 하세요? 제가 저 인간 부모 집에 내려가서 어떻게 하다 왔는지 알기나 하세요? 저 인간은 눈 뜨는 순간부터 저녁까지 드러누워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고, 저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머리털 나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저 인간 조상들 차례상 차린다고 뼈 빠지게 음식을 했어요. 그뿐인지 아세요? 중간 중간 저 인간과 그 집안 수컷들한테 밥 차려줘. 밥 먹고 나면 상 치워, 상 치우고 나면 과일 깎아다 날라…" 라고 푸념한다. (3대 독자인 남편 집안에 수컷이 몇이나 있다고 이렇게 뻥을 칠까.)

작가는 남자집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명절문화를 불만조로 곱씹는다. 실상 요즘 남자들 역시 아내 눈치 보느라 명절이 두렵다. 명절 전후로 아내의 입은 혹처럼 튀어나오고, 시댁에서 지내는 하루나 반나절을 천 년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긴다. 아내들은 잠시 들렀던 시댁을 떠나 친정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자동차 안에서 시댁과 시댁 식구들에 대한 불만을 근면하고 성실하고 집요하고 끈기 있게 터뜨린다. 명절날 저녁이면 딸 가진 집은 북새통이 되고 아들만 가진 집은 적막강산이 된 지 오래다. 그런데도 작가는 명절 때마다 죽겠다고 야단인 여자 편을 든다.

시댁, 처가, 육아, 직장, 배우자와 갈등…. 소설 속 인물들은 아직 미혼인 나(김미연)에게 '그러니까 너는 절대 결혼하지 마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꾸역꾸역 젖은 기저귀를 갈고, 젖을 물리고,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뛰어다닌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확언하면서도 여자들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고, 알고 지내는 남자의 결혼소식에 분개하고 친구의 결혼소식에 불안해한다. 결혼이 여자한테 그렇게 불리하다면서 왜?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남자'의 지극정성에 다소간 감동 먹었다가도 '내가 좋아하는 남자'의 전화 한 통에 쪼르르 달려 가버리는 여자, 어렵게 직장을 구했음에도 더 나은 직장이 나타나면 냉큼 자리를 옮기는 남자…. 이 소설은 21세기 한국인의 차갑고 뒤틀린 열정과 욕망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던하트'는 제18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품이다. 294쪽, 1만2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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