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는 한 나라의 수도치고는 크지 않다. 핀란드 전체 인구는 520만 명으로 헬싱키에는 59만5천 여 명이 살고 있을 뿐이다. 인구만 보면 대구 달서구(60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 규모지만 이곳의 공립 데이케어센터 숫자는 300개로 대구 전체 국공립 어린이집(39개)보다 10배 정도 많다. 헬싱키가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인 이유는 일하는 엄마와 전업주부 엄마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 촘촘한 데이케어센터 시스템은 워킹맘의 지원군이라면, 플레이 파크(Play Park)는 전업주부 엄마들이 걱정 없이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공립 데이케어센터만 300개
지난 6월 오전 헬싱키의 에이라(Eiera) 지역. 헬싱키 중심가에서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이동하면 도착하는 한적한 주택가다. 조용한 거리를 걷다 보니 널찍한 잔디밭이 펼쳐진 북유럽풍의 흰색 집에 도착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가정집 같지만 이곳은 에이라 지역 아이들이 다니는 따띠또르니(Tahtitorni) 공립 데이케어센터(이하 센터)다.
따띠또르니 센터에는 40명이 다니는데 세 살이 안 된 아이는 5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헬싱키에서 센터를 다니는 아동의 평균 연령을 2년 7개월. 걸음도 못 걷는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누워있는 우리나라와 상황이 달랐다.
이날 함께 센터를 찾은 헬싱키시 유아교육부 소속 파씨 브란트 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헬싱키에서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10, 11개월 이전에는 아이가 센터에 들어올 수 없어요. 부모가 각종 육아 휴직을 통해 1년간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니까요."
헬싱키 아이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공립 센터에 다닌다. 에이라 지역은 헬싱키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의사와 회사 임원진 등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지만 이들도 대부분 공립 센터에 자녀를 보낸다.
이유는 헬싱키의 공립 센터는 총 300개, 사립은 50개에 불과하기 때문. 우리나라는 공립 어린이집에 들어가려면 번호표를 뽑고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하지만, 헬싱키에서는 아이의 주소지, 나이 등 서류를 검토한 뒤 공립 센터에 배치하는데 아무리 길어도 4개월이면 충분하다.
또 아이들이 오전 6시 50분부터 센터에 갈 수 있어 이른 시간 출근하는 부모들의 부담도 덜어준다. 브란트 씨는 "센터 보육료는 소득 수준에 따라 달라지며 최대 264유로를 넘지 못한다. 사립 센터는 영어나 스페인어 등 외국어를 가르치는 등 자유로운 커리큘럼을 짤 수 있지만 보육료가 100유로가량 더 비싸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대부분 공립 센터에 간다"고 설명했다.
◆교육 목표는 '놀기'
아이들은 센터에서 노는 법을 배운다. 이날도 바깥 날씨가 15℃로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바깥에 나가 뛰어놀았다. 따띠또르니 센터 담당자인 한루 까르하바르 씨는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놀이(Play)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협력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운다. 여름에는 매일 나가서 놀고,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아이들은 하루에 두 번 이상 밖에서 논다"며 잔디밭에 있는 아이들을 가리켰다.
커리큘럼도 부모와 함께 짠다. 나이에 따라 획일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 개개인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는 것이 센터의 교육 목표다.
놀라운 사실은 핀란드는 국민 대부분이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지만 센터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까르하바르 씨는 "영어는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인데 어릴 때부터 가르칠 필요가 없다. 대신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센터가 나눠져 있어 모국어를 우선 가르친다"고 말했다.
핀란드 센터에는 항상 간호조무사가 상주한다. 이곳에도 센터 담당자를 빼고 선생님 2명, 간호조무사가 5명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고 부모들에게 알려준다. 그는 "간호조무사들은 학교에서 유아교육을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이들이 있어서 센터에 있는 아이가 아프면 재빨리 응급처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플레이 파크, 엄마들이 더 좋아해
다시 트램을 타고 20분간 달려 따이비스 플레이 파크(Taivallahti Play Park)를 찾았다. 플레이 파크란 말 그대로 놀 수 있는 장소로, 아이들이 여가시간에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매일 200여 명의 아이들이 모이는 이곳에는 놀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바깥에는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부터 수영장과 확 트인 공원, 안에는 다양한 책과 장난감은 물론 부엌까지 마련돼 있다. 이용료는 물론 무료다.
낮 12시가 되자 플레이 파크가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은 마당에 있는 커다란 냄비 앞에 재빨리 줄을 섰다. 그릇과 숟가락을 손에 든 아이들은 핀란드 라플란드 전통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신나게 춤을 췄다.
이곳 담당자 야르꼬 또르깰리 씨는 "매년 여름 점심시간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라며 활짝 웃었다. '수프 타임'(soup time)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에 아이들은 그릇만 가져오면 공짜 밥을 먹을 수 있다. "수프 타임은 핀란드에서도 헬싱키에만 있는 오래된 습관이에요. 점심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되니 아이들보다 엄마들이 더 좋아합니다."
이곳을 주로 찾는 이들은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이다. 핀란드에서 이런 엄마들에게 자녀가 3세가 되기 전까지 가정 양육 수당(home care allowance)을 지급하는데, 소득과 자녀 수에 따라 매달 450~748유로를 받는다.
이는 '가장 좋은 보육 환경은 집'이라고 생각하는 정부가 가정 양육을 권하는 당근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친구를 만들고, 엄마들은 서로 육아 정보를 공유한다.
네 아이의 엄마인 끼르시 뽀이깜(37) 씨는 매일 플레이 파크를 찾는 단골이다. "우리 집은 큰 마당이 없는데 이곳에서 애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으니 우리 집 마당이나 마찬가지죠. 애들이 안전하게 놀면서 친구도 만들 수 있고요. 날씨가 추우면 건물 안에 들어가서 놀면 되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장소죠."
플레이 파크가 꼭 전업주부 엄마들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일찍 학교를 마친 초등학교 저학년들을 일하는 엄마가 올 때까지 간식을 주고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각 학교에도 방과 후 학교가 있긴 하지만 한 달에 평균 80~100유로 정도로, 플레이 파크(10~36유로)에 비해 비싼 편이다.
또르깰리 씨는 "초등학교 1, 2학년들은 낮 12시만 되면 학교를 마치는데 이 아이들은 데이케어센터에 갈 수 없는 나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올 때까지 요구르트나 과일을 먹고, 친구들과 놀면서 이곳에 머무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황수영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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