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애극복과 인간승리' 최경식 대구시청 실업팀 탁구부 감독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목표 맹훈

12일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대구보훈병원 내 재활체육관. 연일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체육관을 들어서자 2.7g의 작은 탁구공과 씨름하는 선수들의 기합소리와 이를 독려하는 감독의 목소리가 우렁찼다. 다음 달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대구 일원에서 열릴 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할 대구시청 실업팀 탁구부 선수 5명과 감독 모두 휠체어를 타고 무더위와 인체에서 뿜어내는 후끈한 체열이 뒤범벅된 채 맹훈련 중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서서 선수 개인 기록과 훈련 일정을 빼곡하게 적은 다이어리에 따라 기술 지도에 여념이 없는 최경식(48) 감독. 그는 탁구를 통해 '장애극복과 인간승리'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거머쥔 주인공이다.

"훈련은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마칩니다. 대회 목표는 3위로 제가 국가대표 시절 훈련했던 시스템을 그대로 도입해 하고 있습니다. 30대(1명)와 40대(4명)인 선수들도 힘들지만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최 감독은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만 30여 회 이상 출전한 휠체어 탁구의 베테랑 중 베테랑으로 2010년 은퇴 후 지난해 2월 대구시청 실업팀 탁구부 감독을 맡았다.

창녕이 고향인 그는 원래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었으나 1986년 김제에서 군복무 중 차량전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이후 낙향한 그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다. 심리적 방황은 물론 대인관계 기피증마저 생겨났다. 대구에서 보석가공기술을 익히고 있던 중 TV로 서울올림픽 후 열린 패럴림픽 중계를 보다 휠체어 탁구 경기가 그를 전율케 했다.

"그 순간 '내가 할 것은 저것이다'는 생각에 무릎을 탁 쳤습니다. 패럴림픽 금메달과 세계 휠체어 탁구 1인자가 되어야겠다는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새로운 삶의 의욕에 넘친 최 감독은 1990년 대구시 수성구 파동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탁구에 입문했다. 본래 휠체어 탁구는 비장애우 탁구와 달리 공을 잡는 타이밍이 무척 빠르다. 탁구대에 몸을 바짝 붙여 하는 만큼 공의 랠리가 그만큼 빠르기 때문이다. 당연히 백 스매싱은 점수 획득에 무척 유리하다. 그런데 최 감독의 특기가 바로 백 스매싱. 그의 백 스매싱과 백 쇼트, 백 푸싱은 외국 감독들마저 찬탄을 금치 못했다는 귀띔이다.

1993년 태극마크를 단 이래 2010년 은퇴까지 최 감독은 1998년 프랑스 세계선수권 은메달, 2000년 호드 시드니 패럴림픽 단체 은'개인 동메달, 2002년 대만 세계선수권대회 오픈전 개인 금'단체 은메달, 2004년 그리스 아테네 패럴림픽 단체 금'개인 동메달, 2006년 스위스 세계선수권대회 개인 금'단체 은메달, 2008년 베이징 패럴림픽 단체 금메달 등의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02년 대만 세계선수권대회서는 체급구분 없이 세계 최강 대표 64강이 토너먼트로 겨룬 오픈전에서 그는 1등을 차지했다.

휠체어 탁구 입문 12년 만에 패럴림픽 금메달과 세계 제1인자라는 목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2011년 그는 체육 부문 최고훈장인 체육훈장 청룡장도 받았다.

"이제 지도자로서 우리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지원하고 격려할 따름입니다. 선수 시절엔 앞만 보고 이제는 다가올 전국장애인대회에서 대구시청 탁구부가 좋은 성적을 내게끔 정신훈련과 승부근성 및 주특기 강화 훈련에 힘을 쏟는 게 저의 또 다른 목표입니다."

탁구를 통해 '장애극복'의 꿈을 이룬 그는 5년 전 사랑하는 사람도 얻어 어린 두 딸을 둔 행복한 '인간승리'의 아빠가 됐다.

"꿈을 이루는 마술은 없다. 단지 땀과 노력과 결단만이 그 꿈을 이룰 수 있다."

최 감독이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전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의 말이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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