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이상함과 독특함

현명한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게르만족을 정벌하러 갔을 때 크나큰 실패를 겪었던 적이 있다. 로마 황제는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 적을 섬멸하려고 했다. 사자를 처음 본 게르만족들은 정체를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었는데, 게르만족의 장군은 "저건 로마의 개다."라고 외쳤다. 그 말을 들은 게르만족들은 사자들을 그야말로 '개 패듯이' 두들겨서 잡았다고 한다. 게르만인들이 무시무시한 사자를 '개'로 규정함으로써 두려움 없이 대했다는 것은 언어가 대상을 인식하는 틀인 동시에 심리적 태도까지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역사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통 한 학급에는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남들과 두드러지게 다른 학생이 한두 명 있다. 이 아이들에 대해서 어떤 반에서는 '이상한' 아이라고 하고, 어떤 반에서는 '독특한' 아이라고 부른다. '이상한' 아이라고 부르는 반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그 아이를 놀리고 따돌리는 것에 대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상하다'는 것이 따돌림을 당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특한' 아이라고 부르는 반에서는 그 아이를 인정해 주고, 더 나아가서 지금은 나타나지 않지만, 보통의 아이들보다 뛰어난 무엇인가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나 초등학교 교실에서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아이를 보고 교사가 "넌 참 이상하구나."라고 말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대놓고 '저 아이는 왕따를 시켜도 된다.'라는 말과 비슷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에 교사들은 항상 조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회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들이 있다. 정부에서 친정부적인 인사들을 공직에 대거 발탁했을 때, '국정 철학의 공유를 중시한 인사'로 말할 수도 있고, '코드 인사'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똑같은 현상에 대해 표현만 달리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둘의 차이는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다. 사실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인사는 인사권자와 마음이 맞고 인사권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코드 인사'로 규정하면 인사권자는 조직의 목표보다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부의 인사 문제에 대해 별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그렇게 규정하는 순간 비판적 입장은 확고해진다.

우리가 세상을 보다 정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규정한 말의 굴레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통찰을 통한 규정이 필요하다. 이때 그 방향은 사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방향이거나 '독특함'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올바른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민송기<능인고 교사 chamt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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