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고향은 없다

하늘리. 개발독재의 발톱으로부터 하늘이 끝까지 감추어 두었던 땅.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내려설 때 앞산 뒷산 꼭대기에 머리를 부딪칠까 봐 조심해야 할 만큼 사방이 높은 산으로 삥 둘러싸인 마을. 굽이굽이 산기슭을 휘감아 흐르는 달래천을 내려다보며, 양지 바른 곳에 이마를 맞대고 다정하게 늘어선 집들. 소나무, 굴참나무, 산벚나무 같은 어른들이 민들레, 채송화, 맨드라미 같은 아이를 낳아 기르며, 땅과 하늘과 햇살과 바람과 의논하여 곡식과 열매를 만들어 욕심 없이 나눠먹고, 어떤 가벼운 화제라도 정신을 집중하여 경건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살던 동네.

이 맑고 깨끗한 풍경 속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하늘리는 마치 마녀의 주술에 걸려 천 년 동안 잠만 자다가 갑자기 깨어난 동물원처럼 시끌벅적 난장판으로 변했습니다. 툴툴툴 검은 연기를 뿜어대며 포크레인이 떼 지어 몰려와 문전옥답을 허물고, 앞뒤 산의 허리를 후벼 파는 터널 공사장에서 폭약을 터뜨리는 소리가 쩡쩡 울려대자, 파란 하늘이 와장창 깨져 산지사방 흩어지고, 산천의 나무들이 술에 취한 듯 비칠거리는가 하면, 하늘을 날던 새들이 놀라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 북새통에 두 번의 봄이 다 가도록 새끼 한 번 치지 못한 뒷산 꿩서방네, 나무에서 놀라 떨어져 허리를 다친 다람쥐, 날아온 바위 조각에 뒷다리를 찍힌 오소리, 입맛을 잃은 마을 사람들이 시들시들 시들어 쓰러지기 직전, 드디어 공사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형형색색의 차량들이 뿡뿡 매연 꼬리를 달고 빵빵 경적을 울려대며 떼 지어 몰려와,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듯 아름다운 경치를 뜯어먹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다 싶어 군청에서는 또 재빠르게 하늘리를 관광특구로 지정한 뒤, 마을주변으로 둘레 길을 내고, 달래천에 래프팅 시설을 했습니다. 그러자 구름처럼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뒷발꿈치를 물고, 돈 냄새를 맡은 외지 사람들이 얼씬거리더니 토종닭집, 통돼지바베큐집, 유황오리구이집, 레스토랑, 카페가 무성하게 돋아나고, 노래방과 모텔이 뒤따라와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천지개벽의 홍수 가운데서도 결정적으로 마을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은 것은, 마을 한가운데 무슨 권력기관이라도 되는 것처럼 떡 하니 어깨에 힘을 주고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밤낮없이 울려대는 유행가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처럼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리의 산천을 휘어잡았습니다. 풀벌레 소리,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 별의 노래, 꽃의 웃음소리 등등, 모든 다른 소리는 돌로 눌러 죽이고, 그 소리가 새나오는 작은 틈새까지도 시멘트로 막아버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오로지 확성기가 토해 내는 유행가 가락만이, 실핏줄을 타고 몸속 구석구석까지 스며들면서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엌에서 밥을 푸던 아주머니들이 주걱으로 장단을 맞추느라 밥상을 늦게 내는가 하면, 마늘밭으로 가던 아저씨들이 노랫가락에 정신이 팔려 경운기를 개울에 처박기도 했습니다. 노인정에서 고스톱을 치던 할머니들의 어깨가 까닭 없이 들썩이고, 청소년 여러분은 모두 망아지 새끼가 되어 미친 듯이 말 춤을 추며 뛰어다녔으며, 심지어는 동네 똥개들도 밤마다 뒷산 밤나무 숲에 모여 소녀시대의 모창대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단연 열다섯 살 순이와 그 식구들이었습니다. 이효리보다 낫다는 순이의 섹시한 춤사위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제풀에 간지러워 몸을 비비 꼬게 했으며, 긍긍 콧소리 잔뜩 버물려 뽑아내는 노랫소리는 듣는 사람들이 오줌을 철철 싸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논바닥에 엎드려 소처럼 일만 하던 순이 아버지는 빨간 양말에다 나비 넥타이를 매고 군청 문화계 직원을 만나 가요영재프로젝트에 대해 의논해야 한다며 읍내를 쏘다니는가 하면, 일벌레로 소문난 순이 어머니의 몸단장도 가을 나무 단풍들듯 울긋불긋해져 갔습니다. 고속도로 개통 3주년 기념으로 하늘리가요축제가 열리던 날, 순이네 가족은 단연 인기였습니다. 백댄서로 나선 순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춤도 화려했지만 순이 누나의 간드러지는 노래는 달래천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순이네 식구는 순이를 가수로 키워야 한다는 동네 사람들의 열렬한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떠나갔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10년. 가수로 출세하면 돌아와 동네잔치를 벌이겠다고 했는데 아직껏 소식이 없습니다. 하기야 순이네가 출세해서 돌아온들 그들을 알아보고 환영해줄 마을 사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 농토를 팔아치우고 외지로 떠나갔으니까요.

김동국/시인 poetkim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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