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여행과 삶의 즐거움, 해프닝

삶에 풍요함을 더해준다는 점에서 여행은 좋은 취미가 아닌가 합니다. 자연스러움이나 새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기반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인생관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여행에 빠지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을 겪곤 합니다. 때로는 황당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고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하지요. 지나고 보면 이런 해프닝들이 저를 즐겁게 합니다. 잘못된 것은 반성도 하고 좀 더 모험도 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경주의 부채꼴 주상절리를 여행할 때 일입니다. 저는 여행을 하면서 가능한 한 속속들이 보는 습관이 있지요. 여행의 묘미를 알게 된 이후 생겨난 버릇입니다. 바닷길을 쭉 따라 가다 보면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옵니다. 전망대에서 구경하기에는 너무나 절묘하고 신기해서, 주상절리까지 걸어 내려가서 거의 1시간 반을 관찰하면서 사진을 찍으며 감상을 했지요.

그런데 전망대 쪽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아 쳐다보니 아무런 반응이 없더군요. 나를 부른 게 아닌가 보다 생각하고 바닷물이 들고나는 목 쪽에서 계속해서 사진(동영상 포함해서)을 찍으며 한 10여 분을 더 보내고 있는데 또 고함소리가 들리더군요. 나오라는 손짓을 하길래 "나 말인가요?" 소리쳤더니 그렇다고 하더군요.

전망대로 돌아왔는데 거기는 출입금지 구역이라는 겁니다. 경주시청에서 나왔다고 하면서 주의를 주더군요. 잘못했다고 사과를 물론 했지요. 전망대 주위에만 철조망이 쳐져 있어서 옛 군부대 철조망이 덜 철거되어 남아있는 줄 착각한 게지요. 잘못했으니 벌금을 물겠다고 했습니다. 시 공무원은 되었다고 하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그 사람 한국 사람 아닌가 보다"라며 아주 불쾌하게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은근히 화가 나서 대답했습니다. '나 한국 사람 맞고 스스로 벌금도 물겠다고 사과하지 않았느냐?' 했더니 "어른이 알 만한데 왜 그런 짓을 했느냐"며 부아를 돋우는 겁니다. "내 죗값을 물려고 했고 잘못을 시인했으면 됐지 목숨까지 내놔야 할 큰 죄냐?" 이렇게 시비가 확대되었지요. 물론 공무원이 끼어들어서 화해를 했지만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때부터는 여행하다가 위반할 일이 있으면 미리 허가를 받고 양해를 얻어 구경합니다. '절대불가'라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한 번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 벌어졌지요. 무주구천동 33경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경한 경우이지요. 길이 없어 수풀을 헤매고 비를 흠뻑 맞아가며 맨발로 운전하고 걸으면서 끝내는 33경을 4박 5일 걸려 모두 답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33경 중 26경부터 32경까지 구경(33경은 곤돌라 올라가는 향적봉) 해야 하는데 무릎이 고장 나는 등 몸 여기저기를 다쳐 걸어서는 도저히 13㎞ 왕복이 불가능했습니다.

출입구 안내소에서 통 사정을 해도 안 되고 관리사무실에 가서 말해 보라더군요. 관리사무소 직원을 만나 통사정을 해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위반하면 벌금이 얼마냐? 범칙금을 미리 지불하고 들어가도록 해달라." 별의별 설명과 선처를 요청해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수염을 거의 열흘간 깎지 않은데다 백발이어서 그런 상노인이 없어 보였던지 "어르신! 방법이 있으면 왜 안 들여보내겠느냐"며 오히려 그 직원이 제게 통사정하는 희한한 상황이 되었지요. 직원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미리 벌금 내고 들어가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느냐"고요.

그래서 미국에서 살 때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줬습니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살 때 고속도로가 꽉 막혀서 911에 전화를 하면 경찰차가 와서 공항까지 쏜살같이 안내해주고는 공항에서 위반딱지를 발부하는데 우리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느냐고요. '세상에 절대불가!'라는 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결국은 마지막 32경이 백련사여서 템플스테이한다고 들어가서 모두 답사를 했습니다. 절박하면 길은 있기 마련이더군요. 워낙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해프닝 제목만 뽑아봐도 국내외 각각 80개 이상이 되네요.

요즘도 그 제목을 보면서 전율(?)하기도 하고 빙긋이 웃기도 하고 여러 추억으로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많은 해프닝이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니 이 아니 즐겁겠습니까? 모름지기 우리의 삶도 해프닝이 있으면 추억도 그만큼 많아서 삶을 살찌우지 않을까요!

송인섭/대구테크노파크원장 insopsong@tt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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