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문화 콘텐츠는 지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대구 시민들에게는 동물원으로 친숙한 달성공원의 옛 이름 '달성토성'은 가장 대구다운 정체성을 상징한다. 일제 시대 잃어버린 달성토성의 역사를 되살리는 노력은 '대구정신 찾기'의 소중한 과정이다.
◆잊혀진 역사, '달구벌국'과 '달성토성'
기원전 1세기 원삼국시대(삼한시대). 낙동강 유역 곳곳에 '國'(국)이라고 불리는 정치체제가 태동했다. 철기 시대로 접어들면서 침략과 전쟁이 점점 빈번해지기 시작했고,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인접 마을끼리 힘을 모아 지금으로 따지면 군 단위의 작은 나라를 세운 것이다.
대구 달성(達城)은 이 시기 낙동강 유역의 대표 유적지로 역사학자들이 대구의 원형이라 추정하는 작은 나라(가칭 달구벌국)로 존재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2권에는 "서기 108년 신라가 다벌국(多伐國)을 병합한 뒤 서기 261년 달벌성(達伐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역사가 전하는 달구벌국과 달성토성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달국벌국과 달성토성에 대한 현대의 발굴 조사는 1917년, 1968년, 1970년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발굴 조사를 통해 기원 전 집단 거주 시설(읍락)과 삼국사기 기록을 참고로 한 2세기 후반 축성 흔적이 마침내 세상에 알려졌다. 달성은 4세기 이후 본격적인 성곽 축조를 거쳐 고려, 조선, 오늘날의 달성공원에 이르렀다.
◆망국(亡國)의 한(恨)
대구의 원형을 간직한 달성토성이 아직까지 그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잊혀진 유적으로 남아 있는 까닭은 '일제'에 있다. 1894년 이후 달성은 본토에서 조선으로 이동하는 일본군의 주둔지였다. 일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잇단 승전 이후 일본군이 주둔했던 달성을 그들에게 승리를 안겨준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다. 이후1905년 일본 거류민단은 달성토성 공원화에 착수했고, 이듬해 1906년에는 일본 명치천황(明治天皇) 생일을 맞아 황대신궁(皇大神宮) 요배전(遙拜殿)이라는 신사(神社)까지 세웠다.
당시 경상북도 관찰사 이용익은 일본인의 의도에 맞서 달성 서씨 가문에 뽕나무 개간을 독려했지만 일본 군대와 일본인 그리고 친일 관료들에 의해 개간을 중지당하고 말았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본 거류민단은 오히려 요배전 개축에 나섰으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시절 달성은 이른바 황국신민화 정책의 거점 공간으로 전락했다.
해방 이후 신사는 사라졌지만 달성토성은 아직까지 그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1969년 대구시가 달성공원을 개원하고, 이듬해 동물원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달성공원'으로 불리고 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달성토성 복원
대구의 역사를 대표하는 공간이자 망국의 한을 동시에 간직한 달성토성은 언제쯤 부활할 수 있을까? 일제에 의해 사라진 대구의 모태적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고 대구의 역사적 상징성을 되살리자는 지역의 목소리는 지난 2010년 결실을 맺었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달성토성 복원을 '3대 문화권 문화생태 관광기반 조성'의 대구지역 선도사업으로 선정한 것. 172억원을 들여 달성토성을 원형으로 복원하는 게 이 사업의 핵심이다.
하지만 달성토성 복원 사업은 '동물원 이전 지연'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민자 유치 실패로 달성토성 복원의 전제가 되는 동물원 이전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다행스러운 점은 달성토성 복원 사업의 새로운 전기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토성 복원에 시동을 걸지 못하면서 국비 반납이라는 위기에 몰린 대구시가 사업 추진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대구시는 복원사업 중 동물원 이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 주변 정비작업을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하고 있다.
다만 달성토성 복원 사업의 기본 뼈대는 2010년 국책사업 확정 당시 그대로 유지한다. 진입로, 산책로, 토성 탐방로부터 먼저 조성한 뒤 동물원 이전을 마무리하는 대로 성벽과 내부 원지형, 문화유적 등을 복원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야외공연장 및 역사 공간 조성 등을 통해 문화예술 공간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한편 기원 전후 청동기 시대부터 삼한, 신라,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시대별 이야기를 재현하고, 공원 앞을 지나는 달서천을 복원해 수(水) 공간으로 꾸미는 시도를 고민하고 있다.
김대권 대구시 문화체육국장은 "시민과 함께 하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조성하는데 가장 주안점을 두겠다"며 "문화계, 학계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달성 '2천년'의 역사
▷청동기 시대: 취락 조성
▷기원전 1세기 무렵: 읍락국가 달구벌국 성립
▷261년: 달벌성 축조 기록(삼국사기)
▷4세기: 최초의 토성 조영
▷689년: 신라 신문왕, 서라벌에서 달벌로 수도 천도 계획(귀족 세력의 저항으로 좌절)
▷신라~고려 전기: 관아지
▷고려 후기: 달성 서씨 세거지
▷1390년: 공양왕 2년, 토성 석축
▷조선 초기: 세종 연간 국가 귀속, 관아지
▷1596년: 경상감영 개설(1597년 소실)
▷1894년~1895년: 청일전쟁 시기 일본군 주둔지
▷1905년: 일본거류민회 및 친일파의 압력으로 공원화
▷1906년: 일본거류민회가 일본 신사(황대신궁 요배전) 건립
▷1948년: 이상회 시인을 기리는 전국 최초의 시비 건립
▷1958년: 한국 최초의 어린이헌장비 건립
▷1964년: 최제우(동학의 창시자) 순교 100주년 동상 건립
▷1969년: 달성공원 개원
▷1970년: 달성공원 동물원 개원
▷1997년: 대구향토역사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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