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한 삶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제인 듯합니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과 어울리지 않는 일인 듯하지만, '유니베라'는 인류의 행복을 고민하며 30년을 달려왔습니다."
세계 최고의 알로에 기업 '유니베라'의 이병훈(51) 총괄사장이 소비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선친인 고 이연호 회장이 비닐하우스에서 시작한 알로에 사업을 이어받아 세계 알로에 원료시장의 40%를 차지하는 등 글로벌 알로에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고 있는 '유니베라'의 전신은 우리에게 친숙한 '남양알로에'다.
"1976년 '남양알로에'를 창업했는데 두 가지 한계가 있었다. 회사는 이미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확립했는데 기존 회사명으로는 외국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다. 미국에서는 1992년부터 유니베라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유니베라는 '오직 하나의 진실'이라는 뜻으로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라는 우리가 지향하는 기업 경영철학과 잘 통하는 것 같았다.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바꾸는 것이 좋은지 여쭤봐서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유니베라로 통합하기로 하고 창업 30주년이 되던 2006년 개명을 했다. 또 하나 '남양'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남양유업이라는 회사와 혼동되는 일이 많았다. 두 기업이 다 리스크가 너무 컸다."
창업주인 고 이연호 회장이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알로에'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면서 알로에 사업을 시작했다면 이 사장은 선친을 도와 미국과 멕시코에 세계 최대 규모의 알로에 농장을 개척, 알로에 원료를 확보하는 한편, 알로에의 국제규격화를 이뤄내면서 세계적인 알로에 사업의 부흥을 연 장본인이다.
이 사장이 개척한 해외 알로에 농장은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 탐파코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으로까지 확대되면서 유니베라는 세계 알로에 원료시장의 40%를 차지, 한국을 알로에 종주국으로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 그는 '21세기 신농부'인 셈이다.
특이한 것은 유니베라의 알로에 제품은 'UP'(유니베라 설계사)라는 방문판매사원을 통해서만 판매된다는 점이다. 미국과 캐나다 등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마케팅 기법을 통해 세상에 없는 수요까지도 창출하고 있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윤 추구보다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 전하겠다는 '미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유니베라는 특별한 종교적인 사명감을 가진 기업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로벌 알로에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전 세계에 알로에 농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알로콥'(Aloecorp)을 통해 전 세계에 안정적으로 알로에를 공급한다. 또 매출액의 10% 이상을 연구개발비로 재투자, '유니젠'을 통해 알로에 연구에 나서는 한편 '네이처텍'을 통해 완제품을 만드는 등 원료 재배에서부터 연구개발과 생산 판매에 이르기까지 수직계열화 시스템을 갖춘 유니베라는 '아웃소싱'을 통해 수익성과 효율성을 앞세우고 있는 대기업 집단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기업경영에서 속전속결의 속도전이 아니라 슬로시티 같은 '느림의 미학'을 보는 듯했다.
남양알로에는 어떻게 세계 최고의 알로에 기업 '유니베라'로 변신한 것일까. 이 사장을 만나 알로에와 유니베라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 성수동에 자리 잡은 유니베라 본사 건물의 1층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성수동에서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으로 소문났지만 유니베라 직원들에게는 늘 가는 '유기농 구내식당'이라는 점도 특별했다.
-세계적인 알로에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특이하다.
"선친이 원래 동양비철금속 등을 하시던 사업가였다. 그러던 중 40대 중반에 간경화가 생겼는데 그때 지인으로부터 알로에를 추천받아 드시고 건강에 큰 도움을 받았다. 1976년이었는데 그때 알로에의 효능을 알고 (인천의) 공장 뒤에 비닐하우스를 지어 알로에를 시험재배한 것이 시작이다. 선친의 일기를 읽어보면, 당시는 이 알로에로 사업을 하실 생각이 없었고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983, 4년쯤 고교 화학선생님에게 부탁해서 기초적인 제품화 연구를 시작, 1985년 처음으로 알로에 제품을 내놓으면서 알로에 사업에 뛰어들었다. "
-미국 텍사스와 멕시코에 농장을 확보한 것도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미리 오늘을 내다본 것인가?
"그 부분은 아무래도 제가 좀 '미친 짓'을 했다. 당시 미국에 유학을 와서 사회학 공부를 하고 있었고 선친의 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1986년 여름 돈을 좀 벌어야 할 사정이 있어서 한국에 돌아와서 아버지 회사에서 재고관리도 하는 등 일을 도왔다. 3개월 동안 일하면서 사업의 매력에 빠졌다.
미국으로 돌아갔더니 선친께서 (알로에) 좋은 원료를 아르바이트 삼아 구매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원료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미국 텍사스가 알로에 산업의 원산지라는 것을 알게 됐다. 선친이 알로에 사업을 계속하려면 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정도 셋업은 해드려야겠다는 마음에 텍사스를 왔다 갔다 하다가 망한 회사 하나를 물색해서 싸게 살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의 텍사스 농장이다. 당시 제가 이 농장을 인수해서 원료사업을 하는 데는 선친의 반대가 아주 심했다. 사업을 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는 것이었다. 결국 제가 이겼다."
-세계 최대 규모의 멕시코 농장은 어떻게 확보하게 된 것인가.
"텍사스 농장은 10만 평에 공장도 몇 천 평 있는 아주 좋은 농장이었다. 미국에서 최초로 알로에 농사를 시작한 유적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1988년 4월에 인수해서 연말까지 정신없이 녹슨 기계에 기름 치고 잡초도 뽑고 고생을 많이 했다. 농장도 공장도 다 잘 돌아가고 매출도 꽤 많아서 사업이 순조로운 듯했다.
그런데 1989년 2월 100년 만에 냉해가 왔다. 당시 농장에 70만 그루의 알로에가 있었는데 사흘 냉해가 닥치면서 불가사리처럼 퍼졌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기서는 안 되겠다. 이곳을 베이스로 하되 냉해 없는 더 남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멕시코 탐피코 농장을 찾았다.
그 땅도 원래는 '악마의 땅'으로 불릴 정도로 황무지였는데 이젠 '천사의 땅'으로 불리고 있다. 알로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우리가 관개시설을 현대화해서 바꿔놓은 것이다. 알로에를 생산성 있게 키우려면 토양도 비옥하고 물 공급도 잘 돼야 하는 등 사실 상당히 까다로운 식물이다."
-직접 알로에를 키워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수직일관화는 요즘의 기업 시스템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지금 사업을 시작했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웃소싱하는 것이 수익성이 훨씬 좋을 수도 있다.
그때는 교과서대로, 원칙대로 했다. 사업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자연의 혜택을 인류에게 전하겠다며 사업을 시작했는데 무엇이 최선일까 생각해보면 직접 재배하는 것이 맞다.
주요 소재들을 우리가 직접 재배하고 있는데 언제 어떻게 심고 무엇을 주고,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상품이 달라지고 성분도 달라진다. 심지어 안전성도 달라진다. 유기농이라고 해도 아웃소싱을 한다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직접 키우는 것이 최선이다. 가격안정성을 위해서도 그렇다. 원료는 우리가 세계 1위다. 그러나 제품 판매는 한국에서는 1등이지만 글로벌에서는 우리보다 잘하는 데가 많다. 장사는 아주 잘하지 못한다."
-알로에는 우리에게 생소한 식물이다. 알로에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알로에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았을 것 같다.
"우선 알로에의 역사를 봤다. 알로에는 인류역사에서 한 손가락에 꼽히는 천연약용식물이었다. 클레오파트라도 썼고 히로시마 원폭 이후에도 많이 활용됐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없어질 식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알로에에 관한 연구자료도 많이 봤다. 알로에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이런 역사적 가치를 지속시키려면 연구를 통해 실증해야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알로에 산업은 우리가 진입하기 전에 벌써 60년이나 됐는데 알로에에 관한 과학적 규격화는 우리가 처음으로 했다. 그 전에도 시장은 있었지만 규격화가 되지 않았다. 규격화를 통해 시장이 넓어지고 커졌다."
-유니베라는 방문판매를 통해 마케팅을 하고 있다. 그래서는 매출에 한계가 있다.
"유니베라는 화장품과 건강식품을 모두 방문판매를 통해 팔고 있다. 처음부터 '방판'으로 시작했고 지금도 그렇다. 우리는 방문판매라는 판매 방식에 대해 철학적 애착이 있다.
한국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판매 방식은 방판이다. 우리는 방문판매원들이 우리 회사를 통해서 정말로 일의 보람을 찾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꿈과 희망을 갖게 된 것을 봐왔다. 그래서 방문판매를 상당히 중시한다.
오래전부터 방문판매만 고집하지 않고 판매 방식을 달리한다면 사업이 번창할 것이라는 이야기와 방문판매는 다단계 아니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정직한 방문판매회사가 참여하는 사람들(판매원과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유니베라와 함께 방문판매의 가치도 함께 키워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2만5천여 명의 유니베라 방문판매원 중에는 회사와 함께 30년 동안 같이 일해 온 사람도 있다. 이분들과 같은 커뮤니티로 계속 갈 것인가 월마트나 이마트 같은 곳에서 팔 것인가 중에서 우리는 전자를 택한 것이다."
서명수 서울정경부장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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