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경주마 차밍걸

1986년 뉴욕마라톤대회에서 사상 최고로 느린 기록이 작성됐다. 당시 40세의 월남전 참전 용사였던 보브 윌랜드는 4일 2시간 48분 17초 만에 42.195㎞를 완주했다. 두 다리를 잃었던 그는 가죽 보호대로 감싼 두 주먹으로 마라톤 코스를 짚어 나갔고 밤에는 호텔에서, 낮에는 친구 차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면서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대회조직위원회도 이러한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기 마감을 연기했고 그는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기나긴 레이스를 마쳤다. 그는 "어느 곳에서 출발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곳에서 마쳤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잉글랜드 축구 클럽 위건 어슬레틱은 프리미어리그의 만년 하위팀으로 유명했다. 2005-2006년 시즌에 처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후 대부분 하위권이나 강등권에 처해 2부 리그로 추락할 위기를 가까스로 넘겨왔다. 이 팀은 리그 막판 강등권에 처하면 끈질긴 경기력으로 강팀을 눌러 잔류하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시즌 때 강등권인 18위에 머물러 끝내 2부 리그로 떨어졌으면서도 최고 권위의 FA컵 대회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스포츠 경기에서 때로는 강팀과 강자의 승리보다 약팀과 약자의 승리와 패배가 주는 감동이 더 크다. 두 다리를 잃은 전직 군인이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것도 놀랍지만 포기하지 않고 나흘 이상이나 달려 완주한 것은 인간의 정신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약팀이 절박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힘을 내 강팀을 이기는 것 역시 질 수 없다는 강인한 의지가 통념을 벗어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경이롭다.

경주마 '차밍걸'이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채 이달 말 은퇴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차밍걸'은 지금까지 100차례 경마에 출전, 우승하지 못했고 남은 한 번의 경기에서도 우승하지 못할 것이 확실시돼 101연패의 기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차밍걸'은 이 때문에 '똥말'로 불리기도 했지만 마지막 결승 주로에서 한 번은 치고 나가는 등 열심히 달리는 말로 알려져 응원도 많이 받았다. 뒷심은 부족했지만 회복 능력이 좋아 다른 경주마보다 대회 출전을 많이 하는 '개근마'이기도 했다. 인생에서 뭔가를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강한 정신력으로 최선을 다하거나 열심히 사는 것이야말로 박수 받을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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