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IT 연령은 20대, 리얼리? 리얼리!

스마트폰 즐기는 어르신 '실버 모빌리언'

탤런트 한진희'이혜숙 씨는 최근 이동통신사 광고에 부부 역으로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데이터를 너무 많이 쓴다는 남편의 지적에 아내가 "내 데이터는 2배"라며 반격하자 남편이 "리얼리?" 하며 놀라는 장면이다. 또 다른 통신사의 광고에는 탤런트 김영철 씨가 등장, "넌 나에게 3G를 섞어 줬어"라며 분노한다. 자신이 출연했던 영화 '달콤한 인생'의 명대사를 패러디했다.

이들 광고는 코믹하다는 것 외에도 공통점이 또 있다. 모델들이 모두 중장년층이다. 현실 세계에서도 젊은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스마트폰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실버 모빌리언'(Silver Mobilian;노년층을 의미하는 실버와 스마트폰을 활용해 삶을 바꿔가는 신인류를 뜻하는 모빌리언을 합친 조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번 추석에는 부모님께 스마트 기기 활용법을 가르쳐 드리는 작은 효심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

◆스마트폰으로 스마트한 노후를

"지난 시간에는 버스'기차 표를 스마트폰에서 구입하는 방법을 배우셨잖아요? 오늘은 항공권을 한 번 사볼까요? 일단 '플레이 스토어'에서 항공사 앱을 다운받으세요."

11일 오후 공무원연금공단 대구지부(대구 중구 대봉로) 강의실. '실버 모빌리언'을 꿈꾸는 눈망울들이 반짝였다. 10여 명의 교육생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정년퇴임 교원들. 각종 어플리케이션 활용과 모바일 커뮤니티 서비스의 하나인 '밴드'에 대해 익히고 있었다. 평생을 교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전직 선생님들이지만 열의는 10대 학생 못지않았다. 강사의 설명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에서는 앞다퉈 손을 들어 질문을 쏟아냈다.

스마트폰에 대한 이해 수준 차이는 있었지만 목표들은 분명했다. 김경화 씨는 "'카톡'(카카오톡)을 배운 뒤 가족, 친구들과 더 친하게 지내게 됐다"며 "'밴드' '페이스북'도 이미 시작했다"고 자랑했다. 또 김정애 씨는 "내가 사둔 시골 땅을 어떻게 찾아갈 수 있는지 네비게이션 기능으로 알아보고 싶다"고 했고, 정흥식 씨는 "은행 업무를 보기가 편리할 것 같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했다.

이날 수업은 KT가 무료 운영하고 있는 'IT 서포터즈'의 '시니어 스마트폰 드림 멘토 양성 과정'이다. 노인층의 스마트폰 사용이 증가하고 있지만 마땅히 배울 곳이 없고, 노인층을 스마트폰 활용법 강사로 양성하면 사회공헌 일자리도 만들 수 있다는 데에 착안했다. KT는 앞으로 일반 은퇴자들을 스마트폰 활용법 강사로 육성, 아동복지센터 등에 파견하는 '드림 티처' 사업도 실시할 예정이다.

1기 수강생 17명은 4, 5월 두 달 동안 50시간 교육을 마친 뒤 이미 노인복지관'경로당 등을 방문하는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4년 전 공직에서 퇴임한 강순환(64) 씨 역시 5일 동료 퇴직 공무원들에게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쳤다. 강 씨는 "스마트폰이 있기는 했지만 통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정도만 알았다"며 "젊은층 못지않게 SNS 활동을 하면서 인생이 훨씬 스마트해진 것 같다"고 만족했다. 홍승동 공무원연금공단 대구지부장은 "연금수급자인 실버 강사들은 수당보다는 재능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며 "실버 강사들이 늘어나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활용 교육도 신설할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다양한 가능성 열어주는 모바일 기기

대구 대덕노인종합복지관 관계자들은 지난 5월부터 시작한 스마트폰 활용법 교육(8주 과정) 때문에 적지잖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강좌 개설 때마다 수용인원을 훨씬 초과하는 인원이 몰리기 때문이다. 5일 선착순으로 모집한 8주 과정은 신청 첫날 마감됐다. 복지관 관계자는 "선착순 대신 추첨으로 선발 방식을 변경해달라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스마트폰 사용법을 배우는 것은 자동차 운전 실습과 비슷해서 가족 간에는 아무래도 어려운 것 같다"고 전했다.

실버층의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 이용은 이처럼 점점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의 '2012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60대의 인터넷 이용률은 2011년 35.9%에서 2012년 38.5%로 2.6%포인트 늘어났다. 또 70세 이상의 이용률은 8.7%에서 9.7%로 높아졌다.

특히 전 연령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이 63.7%로 나타난 가운데 6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같은 기간 4.6%에서 35.9%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스마트 기기 보유율이 높아져 인터넷 이용 양상이 모바일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과거 인터넷 이용에서 소외돼 있던 장년층이 신규 이용자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인터넷에 익숙한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몇 년 내 퇴직하면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장년층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로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꼽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지난 3월 펴낸 '은퇴연령 계층의 스마트 기기 이용 행태와 라이프스타일'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 응답자의 37.4%가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앱을 주로 사용한다고 답했다. 스마트폰 등을 활용해 소통과 교류의 장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덕노인종합복지관에서 컴퓨터와 스마트폰 활용을 배우고 있는 최곤칠(85) 씨는 대구에 사는 딸과 수시로 '카톡'을 하거나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내용은 간단하지만 부녀간의 정은 더 깊어졌다. 최 씨는 "지난 7월에 자식들이 선물해줘서 스마트폰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다소 어렵기는 해도 재미있다"고 귀띔했다.

실버 모빌리언들은 사진'자전거'등산 등 동호회 활동에도 스마트 기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강순환 씨는 "예전부터 다니던 산악회 등반 행사를 촬영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다들 부러워했다"며 "스마트폰은 은퇴자들의 생활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허경진 KT 대구 IT서포터즈 팀장은 "실버층에게도 스마트폰 없는 생활은 이제 불가능해지고 있다"며 "단순 취미에서 벗어나 창업 아이디어나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정보기술을 활용하려는 어르신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년층 배려하는 정책 나와야

'실버 모빌리언'들은 스마트폰 업계에서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규 유치 가능성이 큰 알짜 고객층이기 때문이다. 특히 실버 세대는 한 번 가입한 회사를 자주 바꾸지 않는 특성을 보여 업체로서는 지속적인 매출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이에 따라 특화 서비스의 출시를 앞다퉈 준비 중이다. SK텔레콤의 경우 50, 60대 고객들의 스마트폰 이용을 돕는 '브라보! 행복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1년 이상 된 고객이 프로그램 전용 홈페이지(bravo.t-event.co.kr)에 등록하면 다음 달 말까지 가죽 케이스를 선물한다. 또 실버 고객에게 유용한 스마트폰 이용 정보를 소개하는 '스마트폰 이용 가이드북'을 대리점과 홈페이지에서 배포한다.

삼성전자는 '실버 모빌리언'을 겨냥해 최근 폴더형 스마트폰을 내놨다. 외부와 내부에 화면이 이중으로 탑재돼 있어 때로는 스마트폰처럼, 때로는 일반 전화기처럼 쓸 수 있다. 닫혀 있을 때는 일반 스마트폰처럼 터치로 사용하다가 폴더를 열면 내부 키패드를 이용해 문자메시지'메신저'이메일 발송, 메모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다.

실버 세대를 위한 각종 앱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의료'헬스케어'레저'게임 앱은 실버 세대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고, 귀가 어두운 어르신들을 위해 통화 음질을 크게 높여주는 앱이나 전자책을 읽어주는 앱 등도 각광받고 있다. 기술 발달로 실버 세대 맞춤형 서비스와 상품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에 맞춰 정부도 노년층의 스마트 기기 사용을 배려하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직 비싼 수준인 단말기 구입비용을 낮추고 이용요금제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이용하려는 실버 세대 대부분은 요금이 너무 비싸지 않느냐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며 "경제적 여유가 없는 실버 세대의 소외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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