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눈치 보여 못가는 추석 황금 연차…직장인 87% "사용 포기"

3년차 직장인 한모(24'여'대구 수성구 범물동) 씨는 달력만 보면 분통이 터진다. 이번 추석연휴는 이틀만 연차를 내면 최대 9일까지 쉴 수 있는 이른바 '황금연휴'. 하지만 한 씨에겐 '꿈' 같은 소리다. 올 들어 연차를 3일밖에 쓰지 못한 한 씨는 기대감을 안고 있었지만, 돌아온 것은 20, 21일 당직이었다. 결국 추석연휴 동안 가려 했던 가족여행은 물거품이 됐다. 한 씨는 "연차가 12일이나 남았지만 올해 안에 다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뉴스에서는 추석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지만 정작 연휴에도 일해야 하는 신세다"고 했다.

최대 9일이나 쓸 수 있는 이번 추석연휴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직장인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추석연휴에도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 다수인가 하면 10명 중 9명이 연차 사용을 포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644명을 대상으로 '올 추석 연차 사용 계획'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7.3%가 '사용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연차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상사, 동료 등의 눈치가 보여서'(21.4%)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추석 연휴가 길어서'(20.8%), '연차제도가 없어서'(20.6%)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대구의 한 전문학원 강사 안모(25'여'대구 수성구 시지동) 씨 역시 올 들어 사용한 휴가가 고작 3일이지만 추석연휴에도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안 씨는 "딱히 연차라는 개념이 없다. 휴가를 쓸 수는 있지만 상사 눈치가 보여 휴가를 쓴다는 건 퇴사를 각오해야 하는 행동이다"고 털어놨다.

전문가들은 직장인의 휴가 사용 여부는 '직장 문화'에 따라 결정된다고 분석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서 지난해 발표한 '국내 기업의 휴가이용 실태와 휴가문화 개선방안'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내 경직적인 분위기'(42.0%)가 직장인들의 휴가 사용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로 꼽혔다.

부드러운 직장 분위기는 휴가 사용의 '도미노 현상'을 낳고 있다. 한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박모(27'대구 동구 지저동) 씨는 이번 추석연휴를 이용해 총 9일간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다. 박 씨는 "회사에서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의 하나로 휴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너도나도 휴가를 사용하니 크게 눈치 보지 않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며 "이번 추석연휴는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라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휴가가 '비용'이 아닌 창조경제를 이루는 '밑거름'으로 생각하는 사회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지자체와 언론, 시민단체가 노사 간에 '삶의 질과 노동'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사회분위기를 바꾸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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