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이스탄불 엑스포 광장에서

거대한 두 문명이 만나 공존하는 국제도시 이스탄불은 늘 열정이 넘친다. 이곳에서 사진촬영을 하며 한 달이나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거의 매일을 노면전차 트램을 타고 차창으로 이 역사도시를 바라보며 출퇴근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면서. 최근 경상북도의 경주-이스탄불 세계문화엑스포 행사에 나온 한국인들이 이스탄불 도시 전체를 축제 무드로 들끓게 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숨 가쁘게 오고 간 한 달이었다.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 사이에 걸쳐있는 도시, 이스탄불의 앞바다 보스포루스 해협은 땅끝과 땅끝이 만나는 접점이다. 육지와 육지가 마주하며 밀어대는 힘이 유럽 쪽의 골든 혼에서 응축되어 찢어진 틈을 만들었다. 이 바다를 경계로 이스탄불 유럽 쪽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누어졌다. 그 틈새를 연결하는 것이 갈라타 다리이다. 그 일대는 동서양이 소통하는 곳이기 때문인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다리 위로는 트램이 흐르고 선착장 앞은 여객선에 몸을 싣는 숱한 군상들로 채워진다. 항상 세계인들이 북적댄다. 다리교각 사이에 빼곡히 들어선 레스토랑에 앉아보면 일몰과 함께 황금빛으로 변하는 바다의 장관을 볼 수 있다. 유럽의 바다이고 아시아의 바다다. 갈라타 다리를 건너 있는 바자르엔 3천300여 개의 상점이 미로를 따라 빼곡히 들어서 있다. '깎고 또 깎아야 된다'가 기본인데 이곳 상인의 흥정솜씨는 이미 오랜 세월동안 검증된 것이다. 실크로드의 종점이어서 생긴 것일까. 이겨낼 재간이 없다.

이곳에서 1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술탄아흐메트 지역에 도착한다. 갈라타 다리 인근이 세인들의 번잡한 삶의 현장이라면 아야소피아 박물관이 있는 이곳은 이스탄불에 있어서 동양과 서양의 정신이 맞닿아 있는 힘이 응축된 곳이다. 성스러운 기운이 가득하다. 천 년의 세월을 두고 마주 선 아야소피아와 블루 모스크는 이곳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접점이었음을 보여준다. 터키 이스탄불이 두 얼굴의 도시로 불리는 요인이 되는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오랜 세월 뒤엉킨 장소이다. 아야소피아에는 예수상을 담은 황금빛 벽면 모자이크 성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푸른색의 미나레트 첨탑 6개가 상징인 블루 모스크는 이스탄불이 이슬람의 도시임을 보여주며 마주 서 있다. 각자의 종교가 무엇이든 거대한 유적들이 전해주는 감동은 세인들의 번잡한 갈등을 잠재운다.

아야소피아는 '성스러운 예지'라는 뜻으로 로마의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성당이었다고 한다. 풍부한 내부 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보고 헌당식에 참석한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터키 정부는 인류 모두의 공동유산으로 보고 박물관으로 개조해 그 안에서 종교적 행위를 일절 금지했다. 오랜 세월동안 여러 번의 화재사고도 겪었고 성상 파괴운동 등 각종 전란으로 부분 파괴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금 우뚝하게 서 있다. 이스탄불이 겪어온 영욕의 역사를 보면 이처럼 오랜 세월을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기적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중세시대를 거쳐 오면서 기독교인들의 끊임없는 보수작업과 이슬람교인들의 이 건축물에 대한 외경심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이 아야소피아 앞마당에서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이 열렸다. 밤마다 한국의 농악대가 두드리는 꽹과리 소리와 태권도의 함성이 거대한 유기체처럼 버티고 있는 이 아야소피아의 머리 위로 울려 퍼졌다. 한 터키 교민은 이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 울었다. 서양과 동양이 공존하는 역사적인 곳에서 불교, 유교, 신라 등 한국문화가 조화롭게 어울렸다. 다시 2천 년을 이어갈 문화의 길, '21세기 실크로드'의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박순국/전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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