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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늦가을-김사인(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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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고달픈 사랑이 아파 나는 우네

불혹을 넘어

손마디는 굵어지고

근심에 지쳐 얼굴도 무너졌네

사랑은

늦가을 스산한 어스름으로

밤나무 밑에 숨어 기다리는 것

술 취한 무리에 섞여 언제나

사내는 비틀비틀 지나가는 것

젖어드는 오한 다잡아 안고

그 걸음 저만치 좇아 주춤주춤

흰고무신 옮겨보는 것

적막천지

한밤중에 깨어 앉아

그 여자 머리를 감네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흐린 불 아래

제 손만 가만가만 만져보네

-시집 『가만히 좋아하는』(창비, 2006)

그 여자는 숨어 있고 사내는 지나간다. 사내가 앞서가고 그 여자가 가만가만 뒤따른다. 사랑에 우는 사내와 사랑의 뒷모습을 어루만지는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면 이런 계절을 느끼는 것일까. 여의치가 않는 삶을 견디어가는 인생살이에서 그중 애틋하기는 사랑인가보다. 섣부른 위로라도 전하고 싶지만 끝내 단정하고 야무져서 빈틈이 없다. 곧 눈이 쏟아질 것만 같은 겨울을 예감하지만 이런 행보라면 '흰고무신' 걸음으로 가만가만 봄까지도 어찌어찌 갈 것 같다.

내가 만난 계절 중에 가장 나이가 적은 것은 봄이다. 여름 출생이기 때문이다. 내가 두 살 때 한 살배기였다. 여름과 가을, 겨울은 나와 나이가 같다. 계절도 나이를 먹는다. 지금 보는 가을은 나처럼이나 머리가 성기고 희끗희끗하다. 내가 계절이기 때문이다. 곧 동갑내기 '늦가을'을 만날 텐데 그때 가만가만 물어봐야겠다. 이 시 어떠냐고.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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