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 좋은 가을, '동의보감'의 고장 경남 산청으로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사적 제214호인 '전구형왕릉'(傳仇衡王陵)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산 16번지에 있다. 가야 10대 임금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는 돌무덤이다. 구형왕은 김유신의 증조부이다. 521년 가야국의 왕이 돼 532년 신라 법흥왕에게 영토를 넘겨줄 때까지 11년간 왕으로 있었다.
전구형왕릉의 무덤을 둘러싸고 두 가지 설이 있다. '석탑'이라는 것과 '왕릉'이라는 설이다.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탑이 안동과 의성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든다. 왕릉이라는 근거는 '동국여지승람'과 '산음현 산천조'에 '현의 40리 산중에 돌로 쌓은 구룡이 있는데 4면에 모두 층급이 있고 세속에는 왕릉이라 전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무덤에 왕명을 붙인 기록은 조선시대 문인인 홍의영의 '왕산심릉기'에 있는데 무덤의 서쪽에 왕산사라는 절이 있어 절에 전해오는 '왕산사기'에 구형왕릉이라 기록되었다고 한다.
일반 무덤과는 달리 경사진 언덕 중간에 총 높이 7.15m의 기단식 석단을 이루고 있다. 앞에서 보면 7단인데 뒷면은 비탈진 경사를 그대로 이용하여 만들어 평지의 '피라미드식' 층단을 만든 것과는 차이가 있다. 무덤의 정상은 타원형이고, 돌무덤 중앙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고 쓰인 비석이 있다.
구형왕릉으로 올라가는 길 왼쪽으로는 '류의태약수터'가 있다. 2㎞ 정도 임도로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었다. 산청이 고향인 류의태는 이곳 약수터의 약수로 탕약을 지었다고 한다. 물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인 그의 정성이 느껴졌다. 약수 한 바가지를 떠 마셨다. 류의태 명성 때문인지 온몸이 상쾌해지고 심신이 다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든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적지 구형왕릉에 도착했다. 능을 보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웅장한 돌무덤을 만들었을까? 어떤 기술로 쌓았기에 1천500년이 넘는 세월의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있을까? 바로 눈앞에서 보고 또 보아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감탄사만 계속 나왔다. 꼭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았다.
우리나라에 이런 돌무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도 왕의 무덤을. 경이로움과 규모에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졌다. 카메라에 무덤을 담았다. 관리가 잘되어 있었으나 의문도 들었다. 돌무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이다. 1천500년 전의 역사이고 남은 사료가 거의 없어 그러한 것 같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신기했다.
왕릉 입구에는 '덕양전'(德讓殿)이 있다. 경남문화재자료 제50호로, 구형왕과 그 왕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경내에는 홍살문, 영정각, 인향각, 정숙당, 추모재 등의 건축물과 연못이 있었다. 해마다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는 제를 올린다고 한다. 여러 채의 건물이 조화롭게 서로 화려함을 뽐내면서도 단아하게 지어져 있었다. 왕과 왕비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라 그런지 덕양전이 꽤 커 보였다.
그곳에서 5㎞ 정도 떨어진 곳에 '동의보감촌'이 있다. 해마다 이곳에서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이달 20일까지)가 열린다고 한다. 산청은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볼거리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가야 무덤에 대한 경이로움을 느낀 뜻깊은 여행이었다.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도 그 경이로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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