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짝짝인 신발 벗어 들고 산을 오르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보았니 한 쪽 신발 벗어
하늘 높이 던지던 사내 내 마음아 너도 들었니
인플레가 민들레처럼 피던 시절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우우우, 어디에도 닿지 않는 길 갑자기 넓어지고
우우,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기억하니
오른손에 맞은 오른뺨이 왼뺨을 그리워하고
머뭇대던 왼손이 오른뺨을 서러워하던 시절
내 마음아 아직도 기억하니 우리 함께 개를 끌고
玉山에 갈 때 민들레 꽃씨처럼 가볍던 그의 웃음소리
내 마음아 아직도 너는 그리워하니 우리 함께
술에 밥 말아 먹어도 취하지 않던 시절을
-시집 『남해금산』(문학과지성사, 1986)
모를 일이다. 이성복 시인의 시를 탐독하다가 이 시에 오래 머물렀다. 모를 일이다. 이 시를 스크랩해 두고서 짬짬이 읽었지만 모를 일이다. 이 시가 왜 내 마음을 자꾸만 끌어당기는지. 두고두고 봐도 도무지 모를 일이다. 이런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밀쳐 두었다가 생각나면 꺼내 읽고 또 밀쳐두길 거의 한 해가 갔다.
무기력해서 서러운 것 같고, 자학과 자책과 자포자기와 어떤 자살의 냄새까지도 풍겨서 더욱 서러운 것 같고, 내가 아니고 내 마음이어서 더더욱 서러운 것 같다. 1970년대와 80년대가 어른거리고, 청춘이 떠오르고, 모든 것이 가능할 것만 같던 헛된 꿈이 떠오르고, 끝내 뒷모습만 남은 사람이 떠오른다.
이 시를 대하면 그저 서럽다. 숱한 강을 건너온 것만 같은데 발은 아직 신발을 신은 채 거기 붙박여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아, 나는 아직도 마음이 하는 일을 몸이 따라나서지 못하는 이상한 사람이다. 그거밖에 아무것도 이 시에서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이 시는 알고 있는 것만 같아서 더 서럽다.
시인 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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