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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아버지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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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허물없이 지내고 나이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이는 엄마와 딸을 볼 때 우리는 자매지간 같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보고 형제지간 같다고 하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다. 여기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는 무언가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주변을 봐도 딸과 엄마의 관계와 달리 아버지와 아들은 어색하거나 갈등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모녀지간에는 갈등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에 비해서는 훨씬 적다고 생각한다. 수년 전 자녀교육에 대한 저술과 강의로 유명한 명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 독서모임에 갔다가 마음에 담아 두고 꼭 실천해야지 하고 생각한 한 가지가 있었다. 아들이 어릴 때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을 보내라고 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미 성인이 된 아들보다는 어릴 때일수록 더 효과적이며, 그런 여행이 아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와 좋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부자 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아들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고 한다.

필자는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 어느 해였던가. 중학생이었던 첫째는 이미 아버지와 둘이 여행하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은 나이였다. 초등학생인 둘째 아들이 마침 해외에 나갈 일이 있던 아빠와 함께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3월 신학기였지만 학업을 잠시 접어 두는 과감한 결정을 하고 열이틀간의 일정으로 나라 밖을 나간 두 부자는 서로 부대끼고 다투기도 하며 둘만의 시간과 경험, 추억을 공유하였다. 요즘에는 아버지에 대한 마음과 이해가 첫째 아들보다 둘째 아들이 더 각별한 것을 보면서 부자지간의 여행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비극적인 관계의 대표적인 것으로 인조와 소현세자를 들 수 있다. 소현세자는 어린 시절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10여 년 간을 아버지 인조와 떨어져 있었고 귀국해서는 아버지의 싸늘한 태도와 마주해야 했다.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 아버지를 대하는 태도에 장애가 있었다고 하겠다. 여기에 권력이 개입하면서 부자지간에 친밀감을 쌓지 못했던 아버지 인조에게 아들은 점점 낯설고 위협적인 존재로 비쳐졌고 결국에는 아들을 죽이는 천륜의 죄를 범하게 된다. 권력을 배후로 하는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친밀감이 없는 부자지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만약 내가 둘째 아들에게 평생 엄마로서 가장 잘해준 일이 있다면 가장 적절한 때에 아빠와 여행을 가도록 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버지들에게 이번 겨울에는 아들과의 여행을 꼭 권하고 싶다.

조미옥 리서치 코리아 대표 mee5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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