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레 미제라블

우리에겐 한 편의 작품이 축소 내지는 압축에 의해 원작 본래의 모습과 전혀 다른 왜곡된 모습으로 알려진 경우가 종종 있다. 빅토르 위고의 고전 '레 미제라블'이 그 대표적인 경우 중 하나다. 어릴 적 우리는 그 작품을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8년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의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이 이야기의 교훈은 빵 한 조각 훔친 가벼운 죄로도 중형을 받을 수 있으니, 절대 죄를 지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빵 한 조각 훔친 죄로 사람을 18년 동안이나 감옥에 가두었으면 그게 국가가 잘못한 일인가? 빵을 훔친 사람이 잘못한 일인가?

또 하나, 이 작품이 원작대로 알려지지 못한 사정 속에는 불어 제목도 한몫 했다. '레(Les) 미제라블(Miserables)', 차라리 영어로 '더(The) 미저러블(Miserable)'이라고 썼으면 그나마 오해가 덜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의 발음구조상 이 제목의 뜻을 미리부터 알지 않고는 처음부터 '레-미제라블'이라고 읽을 사람은 많지 않다. '레미-제라블', 이렇게 읽는 게 훨씬 편하고 자연스럽다. 이러니 처음엔 장발장이 감옥 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나중엔 장발장과 '레미 제라블'이라는 여자의 이야기인가 그랬었던 것 같다.

문고판으로 서점에 진열되어 있던 이 작품은 1990년대가 되어서야 2천 페이지 분량의 원문이 제대로 한글로 번역되어 5, 6권 분량의 전집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영화나 뮤지컬에서는 결코 시각화할 수 없기에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지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밀리에르 신부에 대해 묘사한 100페이지 분량의 첫 대목이다. 이 서두를 읽어야 신부님이 은그릇을 훔친 장발장에게 촛대까지 넣어주며 돌려보내주는 장면이 임기응변이나 객기가 아니라 진정한 용서와 성자의 자비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 장발장은 이때 받은 용서로 인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고, 여생을 가련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와 자신을 괴롭혔던 악인들에 대한 용서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가련한 자들을 용서하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이 본업이신 신부님들이 저항과 투쟁을 위해 모이셨다. 정규직으로의 희망을 안고 국회에서 일하던 청소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으며 가련한 사람들이 되었다. 얼마 전 우리와 미국을 비교한 한 장의 사진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백악관 청소 노동자와 그들식 주먹인사를 나누는 오바마 대통령, 높으신 분의 사무실 앞에 수십 명이 모여서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어두운 표정으로 서 있는 국회 청소 노동자들.

더 추워지기 전에 건물 안에서 따뜻한 정규직으로 일하셨으면, 거리 말고 따뜻한 교회 안에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는 일로 돌아와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 영(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 fur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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