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누가 통일을 두려워하랴

극적이고 충격적이다. 세계가 놀랐다. 왕조 체제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터졌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죽였듯이 어린 조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중국의 정적 제거 방식인 하방(下放'정적을 일정 기간 농촌이나 공장에 보내서 교화시키는 일)이나 일시적 숙청을 택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김정은은 기관총으로 고모부의 목숨을 거두고 화염방사기로 시신까지 훼손했다. 21세기 첨단 문명 시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를 두고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난폭하고 무자비하다. 김정은과 북한의 핵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가 이번 사태에서 입증됐다"고 논평했다.

북한 전문가들은 지구 상에서 유일무이한 3대 세습 체제인 김정은 정권의 몰락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김정은의 몰락은 결국 통일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2013년 말 한국은 통일 직전의 독일을 빼닮았다. 분단국가에 이념 충돌, 정치권 대립과 사회 분열, 노사 갈등, 집단 시위, 실업 문제 등은 통일 이전 독일의 모습과 꼭 같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갑작스레 독일 통일이 찾아왔다. 독일은 하나가 되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막대한 통일 비용에 독일은 1990년대 내내 유럽의 병자(病者)라는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독일은 되살아났다. 10년 만의 반전이다. 독일은 글로벌 금융 위기와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흔들림 없었다. '또다시 독일의 세기(世紀)인가' 할 정도다.

1989년까지 서독에서든 동독에서든 '통일'은 금기어였다. 서독에선 프로이센이나 나치처럼 강력해지면 유럽의 안정이 깨지기 때문에 독일 통일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동독도 서독을 나치와 그 협력자들이 건설한 국가로 규정, 동독만이 독일 역사의 정통성을 지녔다고 주장했으니 서독과의 통일 논의를 외치면 이단자 취급을 받았다. 이 때문에 동독의 지도자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선언하기까지 했다.

우리 사회도 '통일 함정'에 빠져 있다. 통일 비용 때문이다.우리는 통일을 바라고 있기는 한 것인가?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한반도 통일 비용이 1조 달러가량 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측의 경제 수준이 남한과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이런 통일 비용 때문에 우리는 통일을 회피해야만 할까. 통일된 독일이 많은 과제를 돌파해 내고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는 데는 독일 국민들의 희생과 인내, 서로에 대한 아량이 거름으로 작용했다.

우리 경제는 10여 년째 3~4%대의 저성장과 개인소득 2만 달러에 묶여 있다. 통일은 과연 우리에게 부담만 주는 것일까. 통일은 저성장이 고착되고 있는 남한 사회에 기회와 전기가 될 수 있다. 통일 비용의 대부분은 북측에 도로를 닦고, 집을 개조하고, 공장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이 비용은 기업들이 선투자를 할 수 있다.

통일 대한민국은 독일 사례에서 보듯 경제성장률을 크게 높이고, 남북 7천만 내수 시장이 형성돼 외부의 경제 충격에 덜 휘둘릴 수 있게 된다. 북한 주민이 밀물같이 남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생각도 기우다. 북한에 사회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공장을 짓는 등 개발 사업이 불타올라 일자리가 생길 텐데 오히려 '북행러시'가 일 것이다. 남한 탈북자가 3만여 명, 재중 동포 한국 거주자가 50만 명 이상이다. 이들은 수시로 북한 동포들과 전화하고 송금을 해주고 있다. 이들은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해낼 것이다. 그들은 통일 한국 사회의 중요한 완충 세력, 설득 세력, 지도 세력이 될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평화적 통일은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한의 인구 감소, 경제발전 한계, 분단 비용 등과 북한의 악마적 독재, 살인적 빈곤, 인권 탄압 등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다.

통일의 기회를 놓쳐버리면 대한민국은 내부적으로는 갈등과 폭력이 심화되고 외부적으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고립돼 결국 삼류 분단국이 되고 말 것이다.

어느 날 통일의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이를 회피하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고 후손들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통일을 두려워 말자.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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