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도용복의 지구촌 모험] <64.끝> 콜롬비아 레티시아

여권도 비자도 필요없는 포구…새벽 장터 세나라 원주민 북새통

레티시아는 브라질과 페루, 콜롬비아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레티시아는 브라질과 페루, 콜롬비아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다.

콜롬비아 최남단 정글도시 레티시아. 수도 보고타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 울창한 밀림으로 인해 육로로는 격리된 이곳은 페루와 브라질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마존 유역이다. 팔랑거리는 경비행기를 타고 레티시아 인근에 이르면 구절양장 굽이굽이 흐르는 아마존 강이 내려다보인다. 빽빽이 우거진 아마존 밀림 사이로 뻥 뚫린 공터처럼 내려다보이는 조그만 도시가 바로 레티시아다.

레티시아 공항에 발을 내리면 바로 후끈한 습기가 온몸을 뒤덮는다. 한낮 기온은 40℃를 오르내리고 습도는 90%가 넘는 곳이라 금세 끈적끈적한 불편함이 엄습한다.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레티시아는 1970년대 우리나라 면 단위 정도의 시골 도시다. 아마존의 도시이긴 하지만 우리 시골에서 만나는 5일장처럼 생계를 위해 인근 아마존 원주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관공서도 있고 허름한 여인숙 수준의 호텔도 있고 심지어 카지노와 나이트클럽도 있다. 하지만 레티시아에서 배를 타고 조금만 들어가면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아마존 원주민 인디오 마을이 허다하다.

레티시아는 세 나라가 코를 맞댄 국경 마을이다. 도로 하나를 건너면 브라질 포구 마을 타바팅가이고 아마존 강을 건너면 페루다. 국경에 있다고 프론테라(국경)로 이름 붙여진 호텔에서 엎어지면 브라질 국경에 닿는다. 브라질 타바팅가와 콜롬비아 레티시아 사이에는 국경을 알리는 초소나 심지어 국경을 표시하는 선 하나 없다. 콜롬비아 쪽으로 프론테라 호텔과 파라솔 놓인 책상 하나 달랑 놓고 앉아 있는 몇 개의 환전소 정도가 전부다. 이곳을 오가는 데는 검문이고 여권이고 비자가 필요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 도로를 따라 수많은 사람이 브라질과 콜롬비아를 오간다.

하지만 아무리 검문이 없는 곳이라 하더라도 국경지역인 탓에 마약 운반책들이 수시로 드나들 뿐만 아니라 간혹 총기 강도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에 불시에 검문하기도 한다. 총기를 소지한 브라질 국경 경찰의 검문이 시작되면 남녀노소, 차량과 오토바이 가리지 않고 삼엄한 검문을 한다. 여성 경찰도 배치되어 여성의 신체 곳곳까지 수색한다. 불시에 하는 검문이 효과가 더 큰 탓인지 검문을 통해 경찰서로 잡혀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레티시아의 생활모습은 활력이 넘친다. 수많은 오토바이 탓일 것이다. 동네 전체가 차선이 명백한 대로는 하나 없고 대부분 포장상태가 엉망인 골목길로 쉴 틈 없이 온종일 오토바이가 지나다닌다.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아가씨도, 조막만 한 아이 3명을 태운 아줌마도, 브라질로 배달을 가는 젊은이도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조그만 도시에서 모든 이동 수단으로 오토바이가 사용되다 보니 가구마다 오토바이는 필수품이 되어 있고 빚을 내서라도 오토바이를 사다 보니 외지에서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오토바이를 갖고 있는 듯하다.

레티시아의 활력은 새벽 포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둠이 걷히는 어스름한 새벽이 되면 레티시아의 포구는 세 나라에서 모여드는 원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배를 타고 페루로 넘어가는 여객선을 타는 사람부터 페루에서 넘어온 질 좋은 쁘라따나(굽거나 쪄서 먹는 바나나)와 밤에 아마존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팔러 나온 사람들, 새벽 짐꾼들이 주린 배를 채우는 간이 식당들까지 인근 아마존 원주민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배가 닿는 선착장과 육지는 다른 설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배에서 물건을 내리는 곳에서 육지까지 올라오는 모든 길은 전부 진흙탕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발목까지 빠지는 이 길을 인부들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바나나 뭉치를 이고 다닌다. 수렵이나 채집이 전부인 원주민들의 생활은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 새벽임에도 잡은 물고기와 정글 거북을 팔기 위해 조그만 나무배를 타고 나온 아이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아마존의 다양한 물고기 수만큼이나 포구에 모이는 사람들의 인종들도 다양하다. 인디오와 스페니시의 피가 섞인 메스티조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아마존 인디오, 흑인과 백인의 혼혈 뮬라토, 인디오와 흑인의 혼혈 샘보, 또 그들의 혼혈들이 모여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아마존 원주민의 생활을 레티시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포구 새벽시장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발의 물결에 밀려나 이곳을 찾는 외지인의 수가 증가하고 그들이 원하는 문명이 들어오면서 레티시아에도 원주민들이 원하는 것보다 외지인들이 원하는 시설들이 더 발달하게 되었다. 레티시아에서 최고급 호텔이라고 해봐야 여인숙 수준을 못 벗어나는 정도지만 숙박업소 외에도 대표적인 사행 산업인 카지노와 나이트클럽도 성행한다.

덥고 습한 날씨로 인해 해가 지고 나면 마치 제철 만난 물고기처럼 사람들이 모여든다. 아마존을 찾는 외지인을 비롯해 브라질과 페루에서 넘어온 사람들, 그리고 문명의 혜택에 맛을 들인 원주민들까지 찾아들어 레티시아의 밤은 더욱 소란스럽다. 지붕도 담벼락도 없는 나이트클럽에는 유흥에 취한 남녀가 모여 술잔을 나누고 조그만 무대 위에 손바닥만 한 옷으로 몸을 가린 늘씬한 댄서와 이들의 흥을 돋우는 가수의 노랫소리와 반주 소리로 일대가 떠들썩하다. 이들뿐이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는 오토바이 소리, 새벽 시장에 팔 고기를 잡으러 나가는 어부들의 소리까지 뒤엉켜 레티시아에서 밤의 적막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북반구에선 볼 수 없는 적도의 열기와 원시림을 찾아 매년 수만 명의 미국과 유럽인들이 아마존으로 모여든다. 레티시아의 경우 브라질의 마나우스나 페루의 이키토스보다 관광수입은 적긴 하지만 콜롬비아, 브라질, 페루의 아마존 정글 투어가 가능하다. 참가 인원에 따라 투어 가격이 천차만별이지만 밀림이 품어내는 산소의 향기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꼬불꼬불 한없이 이어지는 아마존 강의 꼬리를 물고 가다 보면 떼를 지어 이동하는 새무리들, 강가의 거북이 무리, 강기슭으로 도망치는 수달가족과 느닷없이 솟구치며 출몰하는 분홍색 돌고래를 보는 즐거움이 있다.

글'사진 도용복 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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