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민(대구 북구 산격4동)
첫눈이 내리던 날, 사람들은 모두 약속을 잡느라 분주했다. 첫눈이라는 말에는 고전적인 낭만의 정서가 묻어난다. 도시의 팍팍한 삶에 물들다 보면 감흥은 점점 없어지고 성가시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지만 얼마전 보았던 특별한 첫눈은 아직은 눈이 순결과 소망의 대상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에 칠순의 자원봉사 할머니가 구순의 할머니를 아기처럼 안고 흰 쌀밥 한 숟가락을 떠 입에 넣으려 했다. 팔에 힘이 없는 칠순의 할머니가, 볼 수가 없고 입술만 겨우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할머니에게 밥을 한 숟가락 넣어주고 또 떠 넣어주는 풍경은 안쓰럽다 못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입맛이 없어, 귀도 들리지 않아 밥을 외면하는 구순의 할머니. 한 술이라도 더 드시게 하려고 '옳지! 그렇지!' 하며 숟가락을 넣어주고 또 넣어주는 칠순의 할머니.
전쟁을 치르듯 두 할머니의 실랑이가 끝나고, 칠순의 할머니가 앞섶으로 떨어진 밥알을 훌훌 털어내자 이내 밥상으로 새하얗게 쌓였다. 아! 이게 바로 할머니들의 아름답고 순결한 소망이 담긴 첫눈. 바로 그 첫눈이구나. 그 순간 내 영혼에는 새벽 종소리가 울렸고, 백설의 그리움이 머리 꼭대기를 지나 가슴으로 뜨겁게 쌓이고 쌓였다. 내 가슴에 쌓인 눈물이 서서히 녹아서 할머니들의 순 금빛 강물로 흘러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아끼고 좋아하다 보면 사람들 사이에 맑은 물길이 튼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첫눈에 점점 무덤덤해지는 우울한 날이 계속될 때면 습관처럼 두 할머니의 첫눈을 떠올린다. 그녀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앉아 사과꽃 향기와 순백의 곱디고운 사랑을 전하는 첫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어두운 새벽 골목길에서 선 채로 꽁꽁 얼어붙은 그 겨울날의 눈사람이 물이 되고 드디어 하늘로 날아가 버릴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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