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현철의 '별의 별 이야기] 영화 '플랜맨' 男주인공 정재영

"묵직한 연기보다 유쾌한 코미디 좋아…뽀뽀신도 원없이 해봤죠"

그래, 배우 정재영(44)은 이런 '맛'이 있었다. 유쾌한 모습 말이다. 본인이나 극 중 캐릭터는 진지했겠지만 스크린 속에서 그를 볼 때 관객은 웃음이 나왔다. 현실의 진지함과 무거움, 답답함을 날려줬던 기억이 있다. 영화 '아는 여자'(2004)에서 잘나가던 투수였다가 추락, 별 볼 일 없던 외야수 동치성 역할로 나왔던 그는 극 초반 애인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가, 가란 말이야!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며, 그 무렵 이온음료 광고에서 정우성이 했던 대사를 패러디해 웃음을 줬다. 지금은 다른 배우로 바뀌었지만, 최근까지 한 초코음료 광고에 등장해 시청자들에게 유쾌함을 전했다.

그런 그였는데 요즘 들어 스크린에서 형사(내가 살인범이다)나 채권추심원(카운트다운), 문제 많은 야구선수(글러브), 의뭉스러운 할아버지(이끼) 등 무겁고 어두운 역할로 관객을 찾았었다. 그러니 오랜만에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반갑지 아니할 수 있나. 영화 '플랜맨'(감독 성시흡)이다.

1분 1초까지 계획대로 살아온 남자가 계획에 없던 여자 소정(한지민)을 만나 짝사랑에 빠진 뒤 생애 최초로 '무계획적인 인생'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코미디에서 정재영은 남자 주인공 한정석을 연기했다. 정석은 정확히 새벽 6시에 일어나 침대와 이불의 각을 잡는 등 청소하는 데 2시간여를 보내고, 출근한다. 낮 12시 15분에는 점심을 사러 편의점에 들어간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그는 동료들의 행동이나 모습이 다 마음에 안 든다. 상대의 옷에 머리카락이 묻어 있거나, 책상에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는 걸 지독히도 싫어한다.

이런 설정은 정재영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 실험실이나 수술실에서나 쓸 법한 캡을 쓰고 다리미질을 하고, 비누를 드라이기로 말리는 설정과 멸균기에 안경과 휴대폰을 넣는 것 등도 그의 생각이다. 정재영은 "그냥 말한 건데 미술팀이 고생했다"고 미안해했다. 그러면서도 "정석의 성격과 상황을 한 방에 보여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하며 웃었다.

삭제된 장면도 있다. 비커에 물을 따를 때 딱 70㎜를 재고 먹고, 비타민도 엄청나게 먹는 인물이었지만 없애버렸다. 후반부 키스 신처럼 설정이 변한 것도 있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정재영과 한지민이 진한 키스 신을 벌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재영은 감독과 상의해 가벼운 뽀뽀로 변경했다.

정재영은 "캐릭터와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누구와 옷만 닿아도 세탁소를 가는 친구인데 아무리 과거의 상처를 시원하게 얘기했다고는 하지만 갑자기 바뀌는 건 비약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짚었다. 그래도 뽀뽀 신은 원 없이 찍었다. 정재영은 "뽀뽀 신을 10번 가까이 찍은 것 같다"며 "감독님이 한지민 팬이라서 저한테 감정이입을 시킨 건지 '조금만 더해 주세요' '1초만 더해 주세요'라며 여러 번 찍더라. 나는 당하는 입장이라 좋았는데 지민 씨는 짜증 난 것 같았다"고 웃었다.

정재영은 재미있는 에피소드이자,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도 전했다. 그는 "영화를 보면 불륜 남성들이 많이 찔릴 것 같다"며 "여성분들이 많이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정석과 소정(한지민)이 서바이벌 오디션에 도전하는 노래 '유부남이'에 불륜의 노하우(?)가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왜 두 개니?' '내 이름 왜 남자니?' 뭐 그런 노랫말 정말 웃기지 않나요? 바람 안 피우는 게 가장 좋은 거지만, '그게 안 된다' 하는 분들은 다른 강구책을 찾아야 할 거예요. 노래에 정말 공감 가는 비법이 다 있다니까요. 저요? 전 바람 안 피워요(웃음). 혹시 오해 살까 봐 소품팀 여자 이름도 앞에 꼭 소품팀 누구누구 이렇게 써놓죠. 아무튼 극 중 노래들을 뮤지가 썼는데 엄청나게 재밌는 것 같아요. 하하하."

현실 속 정재영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게으른 편'이라고 실토한다. 그는 "과거에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며 "'계획을 못 지켰다고 실망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자' 주의"라고 했다. 물론, 깨달은 바가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고 사랑하게 되며 일하게 된다는 주의다. 그렇게 지금까지 잘 흘러왔다.

정재영은 '플랜맨'을 끝낸 뒤 상반기 개봉 예정인 영화 '역린'(감독 이재규)으로도 관객을 찾는다. 배우 현빈의 해병대 전역 후 복귀작으로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조선 시대 왕위에 오른 정조의 암살을 둘러싸고 죽이려는 자와 살리려는 자, 살아야만 하는 자의 엇갈린 운명을 그렸다. 극 중 현빈은 정조, 정재영은 왕의 서가를 관리하는 상책 갑수 역을 맡았다.

정재영은 현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 어떻게 보면 아줌마 같은데, 이 친구는 남자가 봐도 남자더라고요. 이번이 처음 호흡을 맞춘 거라 뭐라고 다 평가를 할 순 없지만 대단한 친구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죠. 연기해 온 거나, 행보를 봤을 때도 그렇고요. 연기할 때는 또 얼마나 완벽주의자인지…. 소문도 좋았는데 만나보니 역시 그 이상이었던 것 같아요. 저렇게 생겼으면 대충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더라고요. 책임감이 많은 것 같아요. 인내심도 강하고, 정말 어른스러워요."

그는 "옛날에 나도 열심히 했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현빈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며 "난 아직도 철이 덜 든 것 같은데 현빈은 철이 꽉 들었다. 하여튼 비범하다"고 추어올렸다. 영화 속 두 사람의 '케미'(배우들이 연기할 때 뿜어져 나오는 일종의 화학작용)가 기대된다고 하니 "정조와 내시가 무슨 케미가 있겠느냐"며 "형사나 다른 역할을 할 때와는 달리 고개도 들지 못했다. 이제야 내시의 어려움을 알았다"고 말해 웃음을 줬다.

정재영은 '플랜맨'에서 호흡을 맞춘 한지민에 대해서도 "예쁜데 성격까지 좋더라"고 칭찬했다. '여신'이라는 표현으로 외모는 물론, "꾸밈없고 털털하다"는 말로 성격 좋음을 전했다. 그는 "잘되는 사람들은 분명 그 이유가 있다는 걸, 열정 가득한 빈이나 지민이를 보면서 또 깨달은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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