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는 매력과 신비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물질을 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그렇다. 어떤 이에겐 겨울 바다는 가혹하리만큼 혹독하다. 바다와 삶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생업 현장에서 만나는 겨울바다는 그리 녹록지 않다. 어머니에게 '잠수복이 없던 시절, 겨울에 어떻게 물질을 했나'고 물으면 "속곳(속옷)만 입고 한겨울에도 물질을 했다. 10분 정도 물질을 하면 추워서 50분 정도 모닥불을 피워 불을 쬐고 다시 10분을 물질하고 다시 50분간 불을 쬐고 그랬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잠수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 그때까지 물질하는 해녀는 추위와 함께 그 척박한 바다와 함께 살아왔던 것이다. 겨울 바다를 멋스럽게 여겨 찾는 자연환경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달리, 생업을 유지하는 이들에게는 극한환경에 가까웠다.
세상의 일이란 게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들 하지만 요즘에 이르러 겨울바다에서 물질하는 사람들이 스키장만큼이나 많다. 그만큼 안전한 장비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잠수복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물이 들어오는 습식잠수복과 물이 들어오지 않는 건식잠수복이 있다. 지금도 해녀들이 입는 잠수복은 약간 특이한 재질의 습식잠수복이다. 대개 산업물질이나 레저물질에서는 건식잠수복을 입는다. 남극이나 북극의 찬 수온에서도 버틸 수 있는 잠수복이다. 추운 스키장에 동호인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처럼 물질 애호가들은 겨울바다를 찾는다. 건식잠수복이 있으면 더 쾌적하지만 습식잠수복이라도 겨울바다를 즐기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체온손실 때문에 겨울바다가 다른 계절에 비해 위험한 점도 분명 있기는 하다. 그러기에 겨울바다가 더 스릴 있어 찾는지도 모른다.
겨울 바닷속의 풍경은 상상과는 달리 신선한 녹음으로 우거져 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물속의 세상은 육지와 달리 가을부터 수온이 떨어지면서 식물이 자라기 시작한다. 식물들로만 본다면 바닷속의 겨울이 육지의 여름이 되는 셈이다. 각양각색의 해조류들이 엄청난 크기와 길이로 자란다. 그러다가 봄이 오면 수온이 조금씩 높아지면서 점점 녹아 사라지기 시작하고 수온이 높아진 여름철에는 자취를 감춘 황량한 바다가 되는 것이다. 겨울의 물속은 육지의 황량한 산하와는 반대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여러 가지 이설이 있을 수 있으나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원천이다. 그곳에서 꿈틀대고 춤추는 생명을 느끼려면 역시 겨울 바다가 제격이다. 겨울 바다의 물속에는 수온이 낮을 때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해양생물이 있다. 해조류가 대표적이겠지만 해삼도 그렇다. 다른 계절에서는 보기 힘든 해삼이 지천에 널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겨울에는 다른 계절에 비해 사람이 없어 한적하게 바다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울 바다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 저 차가운 물속에 생명이 꿈틀대는 세상이 있다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바다에서 눈이라도 만나 설상가상이 아니라 설상수상이 되기라도 한다면 아주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겨울 바다에 가자. 거기엔 아직도 알 수 없는 태고의 신비와 약동하는 생명의 태동이 있다. 적절한 장비와 충분한 연습이 있다면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겨울 바다는 새로운 생동감과 살아있음을 선사할 것이다.
고경영(보온씨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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