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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고향-김용락(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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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울타리의 산수유꽃

흙담장 아래 코딱지꽃

부황든 들판의 보리꽃

수챗구멍의 지렁이꽃

누이 얼굴의 버짐꽃

빚 독촉 아버지의 시름꽃

피는 봄밤에 몰래 집 나왔었는데

이젠 다시 살구꽃 피는 고향 그리워

 -「푸른별」, 1987.

바람 끝이 부드럽고 다시 봄이 오고 있다. 머지않아 꽃이 필 것이다. 대체로 꽃은 밝음의 이미지다.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시의 앞부분에 열거된 꽃들은 화자로 하여금 몰래 집을 나오게 하는 부정적 이미지다. 왜 꽃이 부정적 이미지로 등장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혹은 1970년대의 우리 농촌의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산업화니 근대화니 하는 어휘들이 무슨 주문처럼 떠돌고 농촌은 점점 소외되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힘겹게 농사를 지어도 농촌은 점점 피폐해 가기 시작하고 청소년은 공장으로 가고 어른들도 도시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농촌에서의 봄은 희망이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도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기약할 수 없는 봄은 절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꽃이 핀다는 것은 오히려 절망을 심화하는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은 피어서 무엇 하리.'라고 독백을 하게 된다. 이 시의 화자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피는 꽃을 시름꽃이라 이름하고 그 시름꽃 피는 밤에 몰래 가출을 한다.

떠난 고향이지만 화자는 다시 고향을 그리워한다. 인간존재의 근원이 고향이고 고향은 언젠가 다시 회귀해 할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런 수구초심(首丘初心)이 아니다. 존재의 근원을 버리도록 고향을 피폐하게 만든 당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농촌 정책의 부재로 인한 고향의 상처는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권서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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