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42) 씨는 요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인 초등학교 동창 밴드(BAND)에 글을 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친구들의 댓글 읽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재미난 글이나, 사진, 점심때는 뭘 먹었는지 등 사소한 것까지 죄다 밴드에 올린다. 친구들이 "재밌겠다" "맛있겠다" "좋아보인다"는 등의 글을 올리면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간다.
김 씨는 "주위를 둘러보면 신나는 게 없다. 쌓이는 업무 스트레스며, 힘든 인간관계, 아이들 교육까지 온통 걱정거리뿐인 때, 철없던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대화는 잠시나마 이런 시름을 잊게 해준다"며 "같은 시대를 살았고, 함께 늙어간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주고받는 글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고 했다.
중'장년층이 스마트폰에 푹 빠졌다. 뉴스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의 글을 읽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 유저(user'사용자)로 변신했다. 아저씨들을 '스마트 중년'으로 변모시킨 1등 공신은 폐쇄형 SNS. 이는 아는 사람하고만 그룹을 만들어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특히 네이버의 동창 밴드는 중년층에서 폭발적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밴드 열풍은 2000년대 초반 유행을 몰고 왔던 동창 찾기 사이트인 '아이러브스쿨'을 연상하게 한다. 그때도 컴퓨터 사용이 서툴렀던 중년들이 이것 때문에 '컴맹'에서 탈출하는 등 사회적 이슈를 만들어냈다.
동창 밴드는 컴퓨터에서 벗어나 스마트폰으로 옮겨오면서 접근성과 속도성을 높였다. 또 사용이 쉬울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동창들을 수월하게 만나게 해주고, 살아온 흔적들을 되짚어보게 된다는 장점이 중년층을 빨아들이고 있다.
증권사에 다니는 이모(54) 씨. 서서히 퇴직을 준비해야 할 나이가 된 그는 그래도 동창회만큼은 빼놓지 않고 나갔다. 그러다 우연히 네이버 동창 밴드에 가입했다. 이후 스트레스가 상당히 풀렸다. 이 씨는 "대학생인 자식들은 들끓는 청춘의 에너지를 발산하느라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다. 마음이 허전한 찰나에 동창 밴드에 올라오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으면 나만 그렇지 않다는 위로를 받게 된다"고 했다.
밴드 활동은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번개'가 가능하다. 누군가 모임장소만 알리면 지정하지 않은 친구들과의 우연한 만남을 가질 수 있다. 이렇다 보니 동창회도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대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모 초교 동창회는 평소 20명 정도 모이는 수준이었으나, 밴드를 만든 뒤 80명 넘게 모여 급하게 모임 장소를 바꾸느라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김지호 경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폐쇄형 SNS는 독립된 특성이 있어 심리적인 위안감을 준다"며 "직장과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스트레스받는 중년층이 이런 밴드를 통해 동창회 등 인간관계의 재구성에 재미를 발견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시로 울리는 알림음 공해와 적절치 못한 만남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부작용 우려도 있다. 공무원 정모(48) 씨는 "밤낮없이 울려대는 알림음이 업무는 물론 일상생활에도 방해돼 얼마 전 밴드에서 탈퇴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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