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사순절(四旬節)과 줌쌀

지난 수요일 성당에서는 특별한 예식이 있었습니다. 미사를 거행하는 중 지난해 성지 주일에 축성한 나뭇가지를 불에 태운 재를 축성하고, 사람들의 머리 위에 얹는 예식이었습니다. 사제(신부)들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재를 얹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혹은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말합니다. 재를 얹는 예식이 거행되는 날을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며, 이날부터 부활절을 준비하는 40일간의 사순시기가 시작됩니다.

부활절을 준비하기 위한 40일간의 기간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해방돼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생활한 40년,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머문 40일, 엘리야 예언자가 호렙산으로 가는 길에 단식한 40일, 예수님께서도 세례 후에 단식한 40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네 가지 사건에 나타나는 40이란 숫자는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하느님을 만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지내는 사순시기는 그 어떤 것보다 새로운 것, 인류 역사에 오직 한 번 있었던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고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한 기간입니다.

부활절을 잘 준비하기 위해 사순시기 동안 회개의 삶, 즉 세상의 온갖 죄악에 물든 삶에서 벗어나 하느님에게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시기에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준비를 하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교회는 신자들에게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을 실천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단식을 통해 육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죄악과 불의에서 벗어나야 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이웃을 위해 내어 놓는 자선을 실천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지 230여 년밖에 되지 않지만 사순시기에 기도와 단식 그리고 자선을 꾸준히 실천하여 왔습니다. 초기 100여 년간 혹독한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들은 가진 것을 버리고 산속으로 숨어들어야 했기에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가난 속에서 열심히 기도와 단식을 했을 뿐 아니라 끼니마다 한 줌의 쌀을 별도의 항아리에 모아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습니다. 이것을 '줌쌀'이라고 부르며,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내어 놓았습니다. 신자들에게 '줌쌀'은 절제와 금욕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는 것은 물론 가난한 이를 자신의 식탁에 초대하여 함께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을 또 다른 예수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줌쌀'은 바로 가난한 이를 불쌍하니까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안에서 수난받는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분의 고통과 수난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이 '줌쌀'의 전통이 오늘날엔 사순절 저금통으로 바뀌었지만, 신앙의 선조들이 가졌던 '줌쌀'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정신을 올 사순시기에도 생생히 실천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김명현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국제다문화대학원장 timoteo@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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