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 속의 인물] 유태인 수용소 처음 만든 하인리히 힘러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 독일은 유럽에 거주하던 900만 유태인 중에 3분의 2에 달하는 인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에는 어린이도 100만 명이나 됐다고 한다. 이들 유태인들은 독일 내 약 40여 개 수용소에 감금되어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끝내는 죽어갔다. 이런 강제 수용소의 시초가 된 곳이 뮌헨 북서쪽에 설립된 다하우 강제 수용소였다. 다하우 수용소는 최대 규모의 아우슈비츠와 함께 유태인 학살의 상징으로 여겨져 오늘날까지 독일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의 방문 명소가 되고 있다.

다하우 수용소를 처음 만든 사람이 하인리히 힘러이다. 나치 독일의 악명높은 SS(나치 친위대)와 게슈타포의 최고 지도자이기도 했던 힘러는 후에 괴링에 이어 히틀러 정권의 실질적인 3인자였다. 힘러에 의해 1933년 오늘 설립된 다하우 수용소는 뒤이은 다른 강제 수용소의 모델이 되었다. 30여 개국 20만 명의 '죄수'들이 이곳에 수감되었는데 그중 3분의 1 이상이 유태인이었다. 질병, 영양실조, 자살 등으로 3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힘러는 종전 후 연합군에 의해 전범으로 수배되었고, 체포되자 입속에 숨긴 청산가리 캡슐을 깨물어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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