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새누리당, 대구경북이 우스운가

예전 TV를 보던 초등학생 딸이 '밀당'이 뭔지 물어본 적이 있다.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밀당'이란 단어가 사용됐었나 보다. 적절한 의미를 생각하다 "서로 사랑하는 남자와 여자가 있는데, 한쪽이 너무 잘해주면 금세 잘해주는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소홀하게 대할 수 있어 적당하게 못해줄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그러자 "왜 사랑하는데 못해줘야 하는데?"라는 질문이 되돌아와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경북이 처한 형편과 비슷한 것 같아 딸과의 일화가 생각났다. 대구시장 선거판에서도 시나브로 낙하산 공천설을 흘리더니, 최근엔 여성 전략공천 우선지역 선정과 관련해서도 지역민을 울화통 터지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인 2010년 5회 지방선거 당시 야권 바람이 불면서 야당인 민주당이 수도권에서의 기세를 전국으로 넓힐 때 이를 막은 곳이 대구경북이다.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은 16곳의 광역단체 중 6곳을 얻어 민주당(7곳)에 패하긴 했지만 근소한 차에 그쳤다. 지난 대선 때는 또 어떤가. 말도 안 되는 '8080'(80% 투표율, 80% 득표율)을 달성하며,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시키는데 단기필마(單騎匹馬)의 역할을 했던 곳도 대구경북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아낌없이 애정을 쏟아주는 대구경북을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도를 넘은 듯싶다. 이달 14일 오전에 열렸던 새누리당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대구시장 여성 후보 전략공천 이야기가 뜬금없이 나왔다. 한 최고위원이 "현재 새누리당 광역단체장에 나선 후보 중 여성이 없다. 당의 가장 텃밭이라는 대구에 여성 후보를 낸다면 그 자체로 상징성이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대구에 누구를 꽂더라도 다 당선될 테니 (여성 공천이) 큰 무리가 없지 않나"라는 발언도 나왔다고 한다.

또 중앙당 공천관리위 회의에서는 한 위원이 "3선으로 물러나거나 불출마한 기초단체장에 여성을 우선 공천하면 잡음이 없다. 대구경북은 특히 더 잘될 것"이라며 대구 북구'동구와 경북 포항'영덕 등을 지목했다고 한다.

'밀당'을 넘어서 '어장 관리' 수준이다. 대구경북은 오랜만에 지방선거다운 선거판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대구시장 선거는 역대 처음으로 새누리당 후보자가 8명이나 경선전에 참여하는 등 전국 최고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후보가 열심히 뛰고 있는 판에 갑자기 여성 공천이니, 전략공천 운운하는 것은 대구경북 지역민을 만만하게 보는 처사가 아니면 무엇인가.

24일 민주당 김부겸 전 최고위원이 대구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새누리당 경선은 물론 본선에서의 선거전도 볼만하게 됐다는 평이 나온다. '대구경북을 보는 새누리당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차라리 야당 후보를 택할 것'이라는 격앙된 목소리가 여론 지도층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대구경북의 광역'기초단체장은 대구경북 지역민이 뽑는 것이지, 중앙 정치권의 기득권을 사수하는 자리가 아니다. 유권자들의 뜻을 묻는 경선 절차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예전처럼 일방통행식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패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대구경북의 화려한 선거의 봄이 활짝 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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