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儒敎와 대장금

한류(韓流)의 대명사였던 드라마 '대장금' 뒷이야기를 올가을 안방극장에 올릴 모양이다. 2003년 9월 방영을 시작한 대장금은 40%가 넘는 평균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나아가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에 이르는 100여 국에 소개되며 한류 신드롬을 일으킨 작품이다.

'대장금' 전편이 의녀 장금이 임금의 주치의까지 오르는 과정의 우여곡절을 담았다면, 후속편은 어머니이자 스승이 된 장금이 또 다른 삶의 시련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시대적인 배경은 전편의 중종에 이은 명종 시대이다. 사화(士禍)가 일어나고 의적(義賊)이 출몰하던 혼란스러운 사회이다.

아무튼 '대장금'의 안방극장 재등장이 한류의 부활로 이어질지 국내외 팬들의 기대가 사뭇 뜨겁다.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중국에서는 벌써 투자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니, 한류 열풍이 또 후끈해질 조짐이다. 최근 일본인들의 반한(反韓) 기류까지 녹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대장금이 홍콩의 안방극장을 사로잡았을 때 중화권의 반응은 실로 대단했다. 현지 언론은 '장금정신' '장금철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한 논객은 "장금정신은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자강(自强)을 이뤄낸 한국 역사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대장금을 보면 유교 전통문화의 정수가 진열된 박물관을 참관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인민일보는 '중국 청소년들은 선조의 유교 이념이 시공을 초월한 이웃나라에서 더 잘 계승된 것에 감동과 함께 반성의 여지를 가진다'고 썼다.

그런데 정작 드라마 대장금은 드러내놓고 유교를 표방하지 않았다. 유교의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도 유교적인 이상을 잘 그려낸 것이다. 드라마에 면면히 흐르는 조선의 역사와 정신문화가 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는 세계인의 보편적인 정서에 흠뻑 다가선 모양이다. 한류의 원동력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가?

조선을 문약(文弱)으로 이끈 공리공론이요, 망국으로 치닫게 한 고리타분한 사상이 한류의 동인이라니, 역설이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한다. 우리는 오랜 세월 조상의 내면과 사상을 지배해 온 유교를 과연 얼마나 알고 있으며, 또 얼마나 알려고 노력했던가.

'유교는 천(千)의 얼굴을 가진 문화 현상'이라고 한다.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사상이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신유학(주자학)은 선비들이 수난을 겪던 16세기의 타락한 정치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퇴계학(退溪學)으로 거듭났다.

17, 18세기의 시대적 요구에는 실학(實學)으로 화답했고, 서세동점의 충격에는 천주교(西學)와 접목했다. 19세기 민초들의 함성과 함께 동학(東學)으로 표출되었고,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는 독립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1970년대의 기적적인 경제성장과 80년대의 열정적인 민주화, 그리고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은 국력의 신장 그 바탕에도 유교가 있었다. 학문과 교육의 가치를 강조하며 개인의 인격 수양을 전제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를 지향했던 유교의 전통과 선비정신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장금은 사화의 시대인 16세기가 배경이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극심했던 위기와 혼돈의 시대였다. 수라간을 무대로 벌어지는 최 상궁-금영 계열과 한 상궁-장금 계열의 대립 구도는 훈구와 사림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상궁이 죽은 후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장금이 승리를 이뤄내는 여정은 선비의 표상인 조광조가 희생된 후 사림이 훈구파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중국 지식인들은 대장금에서 한국의 유교문화와 선비정신을 읽어낸 것이다. 주로 외래문화를 수용해 발전시켜 온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한류는 실로 놀라운 반전이다. 그 비결이 우리의 건강한 유교적 일상에 있었다.

대장금의 주인공인 한류 스타 이영애의 삶 또한 그렇다. 절정의 인기에도 어머니와 아내로서 육아와 가정을 우선시했다. 거액의 CF와 품격이 떨어지는 방송 출연을 자제하면서 깨끗한 이미지를 유지해 온 것이다. 유교적 가치와 장금정신의 현대적 실천이다. 그것이 바로 한류의 원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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