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용경협(龍慶峽)에서 용 한 마리가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등룡(騰龍) 에스컬레이터를 보았다. 길이가 자그마치 258m로 정말 신기했으나 매우 위험한 모습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달 10일 월요일이 시작되면서 가까운 범어산으로 바람도 쐴 겸 집을 나섰다. 여느 때처럼 범어네거리 LIG건물 앞 도시철도2호선 범어역 통로를 지나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갔다.
오른쪽 진입로를 확인하고 항상 그러듯이 오른손으로 에스컬레이터 피댓줄을 안전하게 잡고 내려간다. 지상에서 지하 입구로 들어서니 공기가 빨려 들어가면서 덩달아 바람이 내 뒤통수 머리카락을 팔랑이게 만든다.
벽면에 설치된 광고를 멋쩍게 보면서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학생들이 장난스럽게 마구 떠들어 대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무의식적으로 반대편으로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로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바닥에 어떤 아주머니가 뒤로 넘어져, 에스컬레이터는 위로 올라가는데도 거꾸로 누운 채 터득거리면서 살려달라는 것이다. 학생들 떠드는 소리로 들리던 것이 바로 이 사람의 목소리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순간 저 아주머니가 다치겠다는 생각에 잠깐 멍하게 서서 보던 것도 잠시, 나는 타고 내려가던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내려갔다. 그때까지도 아주머니는 거꾸로 쓰러진 채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저 살려 달라는 소리를 지르고 터득거리고만 있었다. 나는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로 바로 뛰어올라갔다. 내가 도착할 때까지도 아주머니는 쓰러져 일어서지를 못하고 그저 살려 달라고 소리만 지르고 있을 뿐이었다. 가지고 있던 윗옷이 얼굴에 덮여서 재빨리 윗옷을 거머쥐고 나도 비틀거리면서 겨우 아주머니 머리를 받쳐 올려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에서야 길 위의 총각이 내려와서 부축해 주었다. 그 아주머니는 가방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총각이 다친 데는 없느냐고 묻고, 아주머니가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곁 턱에 앉는 것을 보고, 나는 가방을 건네주었다.
봄기운이 완연한 범어산 공기를 마셨다. 청설모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다니며 먹이를 찾는다. 봄볕이 내리는 범어공원에 박양균 시인의 '계절'이라는 시를 읽었다. 어린이대공원 곁으로 내려와 동대구로를 걸어오는데 매화가 만발하였다. 봄볕 내리쬐는 범어동에서 하루가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거꾸로 쓰러졌던 위험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면서 나의 오른손은 버릇처럼 피댓줄을 단단히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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