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2인자 괴링은 미술이나 예술에 대해 무지했다. 마음에 안 드는 현대미술이나 전위 미술은 태워 없앴을 정도였다. 대신 히틀러를 등에 업은 그는 미술품 수집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제2차 대전 당시 프랑스와 폴란드 등 점령지역에서 미술품을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빼돌려 자신의 컬렉션을 완성했다. 주로 유대인이 소유하고 있던 미술품이 많았지만 점령지 박물관의 소장품도 예외일 수 없었다. 괴링이 빼앗은 미술품 등이 500만 점을 넘었다.
전후 나치가 빼앗은 물품은 대부분 원주인을 찾아갔다. 여기에는 연합국이 세계 각지의 박물관장 건축가 등 350여 명으로 만든 모뉴먼츠 맨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나치가 은닉한 미술품을 샅샅이 추적했다. 그래도 아직 찾지 못했거나 사라진 나치 컬렉션은 부지기수다. 종전 7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괴링이 약탈한 미술품 찾기는 계속되고 있다. 독일 정부도 힘을 쓴다.
지난달 31일 독일 외교부장관이 그림 한 점을 폴란드에 돌려줬다. 18세기 프란치스코 구아르디가 그린 '왕궁의 계단'이었다. 당초 폴란드 박물관에 걸려 있던 것이다.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이 박물관에 있던 수천 점의 소장품이 사라졌고 1999년 독일의 박물관에 걸려 있는 그림 중 하나가 바로 도난당한 그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랜 기간의 협의 끝에 이 그림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 날 프랑크 월터 스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돌려주게 되어 기쁘다. 그림을 돌려주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과정은 독일과 폴란드 간의 험난했던 역사를 대변한다."
그림 반환을 계기로 침략국과 피해국으로 앙금이 남아 있던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가 개선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힌 것이다.
이에 며칠 앞서 구를리트는 나치 시절 유명 미술상이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1조 5천억 원 상당의 미술품 1천400여 점을 프랑스의 원주인과 그 후손들에게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미술품은 독일 당국이 탈세 혐의로 구를리트 집을 수색하던 중 발견돼 압류한 것이다. 조사 결과 이 소장품들은 나치 시절 괴링의 손을 거쳐 구를리트 집안에 은닉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독일 정부가 나서 나치가 강탈한 미술품임을 밝혀내자 구를리트는 소송을 포기하고 돌려주기로 했다. 독일 정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치 정권에서 약탈한 미술품을 원주인에게 반환하는 법률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독일에 괴링이 있었다면 한반도에는 일본인 오구라가 있었다. 그는 1920년대 대구에 와서 대구전기회사를 차려 떼돈을 벌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문화재를 긁어모으는 데 사용됐다. 그의 집 앞에는 문화재 도굴범이나 암거래상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그 자신 대낮에도 인부들을 끌고 직접 도굴을 하러 다녔다. 오구라 역시 문화와 예술에 대해 무지하기는 괴링이나 다를 바 없었다. 도굴을 위해 다이너마이트까지 사용했다는 구전이 이를 말해 준다. 그 스스로 '나는 사학'고고학에 관해서 일개 문외한'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오구라가 빼돌린 문화재 중 알짜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그의 사망 이후 아들이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 이른 바 오구라 컬렉션이다. 원래 도록에 들어 있는 오구라 컬렉션은 1천144점이고 일부는 팔아 치워 기증된 것은 1천110점이다. 오구라 컬렉션은 도굴되거나 장물이거나 불법으로 유출된 것들이다. 불법이기는 괴링 컬렉션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국에 반환하기는커녕 8점은 국보로, 39점은 국가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일본은 1965년 한'일 회담 때 한국 정부가 반환을 요구하자'개인 재산이라 어쩔 수 없다'며 거절했다.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게 된 이후에는 '국가 소유여서 돌려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바꿨다.
오늘날 해외에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는 14만 560점에 이른다. 그 중 일본이 가져간 것이 6만 5천 점이다. 일본에 빼앗긴 문화재에 더욱 애착이 가는 것은 일제 침략 정책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정녕 일본 더러 독일처럼 하라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요구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더라도 외치지 않으면 얻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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