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단식에로의 초대

요즘 사람들은 몸매 유지와 건강을 위해 단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식의 방법도 생수 단식, 황제 단식, 효소 단식, 과즙 단식, 간헐적 단식 등 다양합니다. 날씬한 몸매를 원하는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향 때문인지 사람들은 가끔 단식을 단순히 다이어트나 질병 치료를 위한 수단으로, 종교생활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종교(그리스도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가 일정기간 모든 음식 또는 특정한 음식물을 끊는 단식을 수행의 방법으로 여겨 신자들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도 신자들에게 일 년에 두 번,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에 단식을 권하고 있으며, 매주 금요일에는 육류를 먹지 않는 금육을 권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기에 단식과 금육을 권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단식은 모세와 예수님의 단식입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에 시나산에서 40일 단식을 하였고(탈출 34,28),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를 받은 후 공생활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였습니다. 이외에도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는 회개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 및 간청의 표시로 단식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 교회 역시 교회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 특히 원로(오늘날 사제)를 임명할 때와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할 때 단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또 이웃이 어려움을 겪을 때 이를 함께 나누며 위로하기 위하여 단식을 하였습니다(시편 35,13).

이처럼 단식은 가장 기본적인 식욕을 비롯한 모든 욕망을 끊고 하느님 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와 자비를 청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울러 단식은 인간의 힘으로만 이루기 어려운 일에 하느님의 뜻이 임하실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한 것이며,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 이웃과 일치를 이루기 위한 사랑의 표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단식은 음식을 끊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하느님의 뜻과 사랑에 일치하려고 하는 회개와 관련될 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 단식은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자신의 삶을 보다 진지하게 돌아보며 하느님과 세상을 위한 사랑의 삶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려는 결단과 관련되었을 때 빛나는 가치를 발합니다.

이제 우리는 멋진 몸매나 건강 유지를 위한 단식이 아니라, 멋진 세상과 건강한 사회를 위해 우리 자신의 욕망을 끊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자신을 내어 놓는 단식을 행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진정한 단식이 어떤 것인지 선언하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어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이사 58,5~7)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합니다. 어느 곳에서는 비만으로 인해 단식을 권하고 있고, 또 어떤 곳에서는 단식과 절식이 일상화되어버린 기아 상태에 머물고 있습니다. 2012년 우리나라 초'중'고등학생의 비만율은 14.7%이며, 그 중 고도비만은 1.4%라고 합니다. 반면 2012년 현재 세계 인구 8명 중 1명이 먹을 것이 부족해 굶주리고 있습니다. 또 불의한 제도와 차별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억압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습니까? 이런 불공평함과 불의가 만연하는 시대가 우리를 단식으로 초대하고 있습니다. 함께 응답하시면 좋겠습니다.

김명현 신부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제다문화대학원장 timoteo@cu.ac.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